2022년 12월 이도현(사망 당시 12세) 군이 숨진 ‘강릉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와 관련해 국내 첫 재연시험 기록을 법원이 지정한 감정인이 정밀 분석한 결과 '도현이의 할머니는 가속페달을 밟지 않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제조사 측 주장과 달리 '변속패턴'이 달랐고, 차량에는 결함이 없다는 국과수의 분석과 비교했을 때 '주행데이터'는 현저히 달랐으며, 풀 액셀을 밟았다는 사고기록장치(EDR) 기록대로 풀 액셀을 밟은 결과 '속도 변화'는 훨씬 크게 나타난 것.
도현이 가족은 이 같은 결과를 바탕으로 "할머니는 페달 오조작을 하지 않았음이 입증됐으며, 페달 오조작이 아니므로 차량 결함에 의한 급발진"이라고 강조했다.
27일 도현이 가족과 변호인 측은 지난달 18일 진행됐던 공식 재연시험의 감정결과를 밝혔다. 앞서 국과수는 차량에 결함이 없으며 운전자인 할머니의 페달 오작동이라는 분석 결과를 내 놓았다. 하지만 이번 사고 재연 분석 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분석과는 차이가 나는 결과가 나왔다.
당시 경찰의 도로 통제 협조와 법원에서 선정한 전문 감정인의 참관하에 이뤄진 시험에서는 사고 차량과 같은 2018년식 티볼리 에어 차량에다 제조사 측이 제공한 변속장치 진단기를 부착해 이뤄졌다.
감정 결과, 제조사 측 주장과 달리 변속패턴이 이번 실제 주행에서 나온 수치들과 맞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재연시험에서 이뤄진 기어 변속 정보를 토대로 실제 속도와 변속패턴 설계 자료상의 예측 속도를 비교했을 때 일치하는 사례는 1∼2건에 불과했고, 8∼9건은 적게는 시속 4∼7㎞에서 많게는 시속 54∼81㎞까지 차이났다.
도현이 가족의 소송대리를 맡은 하종선 변호사는 "재연시험에서 변속패턴 설계자료대로 속도 변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이번 사고에 적용할 수 있는 현실적인 자료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간 제조사에서는 변속패턴 설계자료를 토대로 EDR 자료상 가속페달 변위량이 100%(풀 액셀)인 상태에서 충돌 4.5∼5초 전 분당 회전수(RPM)가 5900에서 4초 전 4500으로 떨어지는 현상에 대해 기어가 3단→4단으로 변속됐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를 두고도 "변속패턴 설계자료대로 속도 변화가 이뤄지지 않음이 확인된 이상 제조사 주장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변속 패턴, 주행 데이터도 국과수와 달랐다= 속도, RPM, 변속단수 등 '주행데이터'도 국과수 분석 결과와 현저히 달랐다. 모닝 추돌 직전 시점으로 되돌아가 시속 40㎞에서 변속 레버를 ‘주행(D)’으로만 두고 2∼3초간 풀 액셀을 밟았을 때 실제 속도는 시속 40→73㎞, RPM은 3000→6000, 기어는 4단→2단→3단으로 변속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어가 중립(N)인 상태에서 속도 및 RPM이 각각 시속 40㎞와 6200∼6400으로 일정했다는 국과수의 분석과 전혀 다르다.
도현이 가족은 국과수의 '운전자가 변속레버를 굉음 발생 직전 D→N, 추돌 직전 N→D로 조작했다'는 분석은 이미 앞선 음향분석 감정을 통해 '변속레버 조작은 없었다'고 밝혀진 만큼, 할머니가 기어 D 상태에서 운전한 게 사실이라면 국과수의 분석은 완전히 틀렸다고 주장했다.
모닝 추돌 이후 상황을 가정해 풀 액셀을 밟았을 때도 국과수 분석치와 차이를 보였다. 재연시험에서는 시속 44㎞에서 120㎞까지 18초가 걸려 가속이 이뤄졌지만, 국과수는 40㎞→116㎞까지 24초가 걸렸다고 분석해 상대적으로 낮고 느리게 가속됐다고 분석했다. 유가족 측은 이 역시 할머니가 브레이크를 밟았던 증거라고 부연했다.
RPM 그래프도 재연시험은 단순한 직선 형태를 보인 반면 국과수는 여러 굴곡이 생기는 형태를 띠었고, 변속패턴 역시 재연시험(4단→2단→3단→4단)과 국과수 분석치(2단→3단→4단→3단→4단→3단) 간 현저한 차이를 보였다.
감정인은 "가속페달과 변속기어 주행 형태를 볼 때 풀 액셀로 주행할 경우 국과수의 감정서 내용과 같은 변속기어 패턴이 발생하기 어려운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시속 110㎞에서 5초 동안 풀 액셀을 밟은 시험을 두 차례 진행했을 때도 속도가 각각 124㎞와 130㎞가 나와 사고기록장치(EDR) 기록을 토대로 한 국과수의 분석치(시속 116㎞)보다 속도 증가 폭이 컸다.
◇"법이 바뀌어야 한다"= 유족 측인 도현 군의 아버지인 이상훈 씨는 이날 나온 재연 시험결과를 차량 제조사인 KG모빌리티를 상대로 약 7억6000만원 규모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판에 증거물로 제시할 예정이다. 이에 다음달 18일 예정된 춘천지법 강릉지원 공판에서는 유족 측과 제조사가 팽팽히 맞설 것으로 보인다.
한편 차량 급발진 사고의 입증 책임은 피해자가 아닌 제조사가 지도록 하는 내용의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인 일명 ‘도현이법은’ 21대 국회에 상정됐으나 논의조차 없이 폐기될 예정이다. 이상훈 씨는 22대 국회에서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계획이다. 그는 “여야 국회의원분들을 만나 대표 발의를 요청하고, 조만간 국민동의청원도 게시할 예정”이라며 “법이 바뀌어야 비극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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