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들이 의대정원 증원에 반발해 지난 2월 20일 집단으로 사직하며 의료현장을 떠난 지 29일로 100일이 됐다. 보건복지부 집계를 보면 전국 주요 수련병원 100곳에서 전체 전공의 중 현재 출근율은 전날 기준 7% 수준이며, 수련병원 211개 전체로 넓히면 근무 중인 전공의가 전체의 8.2%인 864명에 그친다.
이에 따라 환자들도 일부 진료에 차질을 빚는 등 불편이 계속되고 있다. 환자단체들은 정부와 의료계 간 갈등에 따른 의료공백으로 환자와 전공의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본다며 전공의들에게 어서 돌아와서 필수의료 살리기에 동참해 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한국백혈병환우회 등 9개 단체가 모인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이날 성명을 내 “환자의 어려움과 불편을 해소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정부와 의료계 양측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모적 강대강 대치를 지금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연합회는 정부에 “의대정원 증원 자체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의료사고 위험이 높고 근무 환경이 열악하며 개원의에 비해 수익이 적은 필수의료를 살릴 방법을 찾으라”고 요구했다. 의료계를 향해서도 “‘원점 재검토’나 계속적인 집단행동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좋은 의료 환경을 만들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공의들이 사직한 지 100일이 넘어가면서 의료현장에서는 암 환자가 치료를 거부당하거나, 검사가 무기한 연기되는 일도 속출하고 있다. 또 다른 환자단체 모임인 한국중증질환연합회에 따르면 최근 한 여성 췌장암 환자가 서울 소재 대형병원 응급실을 찾았다가 담당 의사로부터 인력 부족으로 치료할 수 없다며 소견서를 써줄 테니 다른 병원으로 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 환자는 예약한 외래진료마저 강제로 취소당했다며 황당해했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는 의료공백 100일째가 스트레스만 안기는 ‘고통의 날’이라며 공식 입장을 발표하지 않기도 했다.
온라인 환자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서울 ‘빅5’ 대형병원 중 한 곳을 지목하며, 현재 이 병원에 ‘전공의가 없는데도 골수검사 예약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올라오기도 했다. 다른 환자는 “해당 병원에 골수검사를 예약했는데, 검사할 선생님이 안 계셔서 무기한 연기됐다”고 답했다.
환자단체 관계자들은 이날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의료개혁 관련 심포지엄에서도 전공의들의 복귀를 호소했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는다면 다른 의료계 직역이 의사들의 영역을 달라고 할 것이고 국민들은 그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며 “늦기 전에 일단 돌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환자들은 100일간 힘들게 버텨 왔는데, 일단 전공의들이 돌아와서 국민들에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 달라”고 호소했다.
안상호 선천성심장병환우회 회장은 “지금 100일을 돌아보면 의대 정원 때문이 아니라 전공의 집단행동 때문에 의료가 무너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법원 결정도 나온 상황애서 의사들은 의료 사망선고만 할 것이 아니라 왜곡된 의료 체계를 바로잡기 위해 머리를 맞대 달라”고 호소했다. 전공의들을 향해서도 “필수의료 전공의 선생님들의 상처를 잘 알고 있다. 많은 국민들이 의료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니 필수의료를 살리고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논의하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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