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핵추진잠수함 도입론을 두고 정작 미국 내에서 공화당과 민주당 계열 간 찬반이 갈리면서 더 논란이 일고 있다.
당장 미국 공화당 일각에서 대북 억제력 강화를 위해 한반도에 전술핵을 재배치하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식 핵 공유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빈번하게 나오고 있다. 현재 미국이 구축한 핵우산으로는 북중러의 군사 협력과 높아지는 핵 위협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공화당의 대표적인 매파인 로저 위커 상원의원은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러시아와 중국 등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2025회계연도 국방 예산을 550억 달러(약 75조 원) 증액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국방 투자 계획인 ‘힘을 통한 평화’를 공개했다.
위커 의원은 보고서에서 “김정은은 매년 계속해서 미국 본토와 인도태평양의 동맹을 타격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과 핵무기를 더 만들고 있다”며 “당장 외교 해법이 보이지 않기에 미국은 한반도에서 억제력이 약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어 “그것은 정기적인 한미 군사훈련을 통해 준비 태세를 유지하고, 한반도에 미군을 지속적으로 주둔하며(persistent US military presence), 인도태평양에서 핵 공유 협정과 미국 전술핵무기의 한반도 재배치 같이 한반도에서 억제력을 강화할 수 있는 새로운 옵션을 모색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북중러 안보 위협↑, 나토식 핵 공유 제기
그러면서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들하고 체결한 것과 비슷한 ’핵 책임 분담 합의’(nuclear burden sharing arrangement)에 한국, 일본, 호주가 참여할 의사가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해 우리는 이들 국가와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발언은 한국과 일본, 호주까지 포함한 인도태평양의 나토식 핵 공유를 구축해야 한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미 현지 언들들은 위커 의원은 상원 군사위가 다음 달 국방수권법안(NDAA)을 심사할 때 자신의 제안을 개정안 형태로 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최근 미 공화당에서 전술핵 재배치론이 부상하는 이면에는 한미가 지난해 4월 채택한 워싱턴선언을 통해 확장억제 강화를 꾀하고 있지만, 북핵 역량과 북중러 등 안보 위협이 빠르게 커지는 만큼 미국과의 동맹 안보를 보장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재선 시 국방장관 임명 가능성이 있는 크리스토퍼 밀러 전 국방장관 대행도 최근 인터뷰에서 전술핵무기 재배치 가능성에 대해 “상황이 정말 악화하면 그건 분명 선택지가 될 것”이라고 언급하며 힘을 실어줬다.
이에 반해 민주당 기반의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한국 핵잠수함 도입론에 부정적인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이 한국 핵잠수함 도입론에 “지금은 미국이 수용하기가 매우 어렵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1일(현지시간) 오스틴 장관은 이날 싱가포르에서 진행 중인 아시아 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연설 후 한국이 핵잠수함 보유를 추진한다면 지지하겠느냐는 패널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그는 “오커스(AUKUS)와 많은 노력을 했고, 우리는 호주와 막 그 길을 가기 시작했다”며 “미국이 가까운 미래에 여기에 더해 한국과도 이러한 계획을 세울 수 있을지는 매우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미국·영국·호주 안보 동맹인 오커스는 인도·태평양에서 중국의 안보 위협에 대응하는 데 중점을 두고 2021년 출범했다. 호주의 핵잠수함 보유를 추진 중이다. 오커스는 재래식으로 무장한 원자력 추진 잠수함을 호주에 제공한다는 계획(필러 1), 3국이 첨단 군사 역량을 공동 개발한다는 계획(필러 2)에 합의했다.
이에 반해 오스틴 장관은 오커스를 거론하며 한국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에는 선을 그으면서 “한국과 미국은 강력한 동맹으로 서로 의지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강조했다.
“美, 인도·태평양 지역서 존재감 강력해”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클린턴 미 행정부 협상대표이자 미 국무부 북핵 특사를 지낸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명예교수는 “한국과 북한, 심지어 미국에도 바람직하지 않은 나쁜 아이디어”라고 지적했다.
국제 공공포럼인 ‘제주포럼’ 참석차 한국을 찾은 갈루치 교수는 지난달 31일 기자들과 만나 “북한이 각종 미사일로 한국 등을 선제 타격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며 “미국은 워싱턴선언 등을 통해 핵 보유에 가까운 억제력을 한국에 약속했다. 북한이 탐지하기 어려운 미 전략핵잠수함으로도 (한국의) 확장억제(핵우산)는 충분하다”고 했다.
게다가 워싱턴 정가는 위커 의원이 제안한 국방 예산 증액 등 특정 동맹국에게 나토식 핵 공유와 전술핵 재배치를 관철하기는 쉽지 않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는 한미가 지난해 4월 채택한 워싱턴선언을 통해 북핵 확장억제 강화를 꾀한 것은 물론 북중러 등 안보 위협이 커지고 있지만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동맹과의 협력을 통해 충분히 통제하고 대응할 수 있다는 현 미국 행정부 기조가 강하기 때문이다.
실제 오스틴 장관은 ‘인도·태평양 지역 내 미국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주제로 한 연설에서 “아시아가 안전해야만 미국도 안전하다”며 “유럽과 중동 지역 충돌에도 인도·태평양이 미국의 ‘우선 작전 지역’으로 남아있어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존재감을 더욱 강력하게 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는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에 대해 사실상 바이든 미 행정부 입장에 동조하는 모습이다. 사실상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확장억제(핵우산)만으로 충분하다는 기조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월 특별대담에서 일각의 '핵무장' 주장에 대해선 “핵 개발 역량은 우리나라 과학기술에 비춰 보면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핵 개발에) 시일이 오래 걸리지 않을 거란 말씀은 드릴 수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은 2∼3년 안에 핵무기를 개발해 배치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국가 운영을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NPT(핵확산금지조약)를 철저하게 준수하는 게 국익에 더 부합된다”고 일축했다. NPT 체제는 핵 비보유국이 새로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어 윤 대통령은 “우리가 지금 핵을 개발한다고 하면 아마 북한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경제 제재를 받게 될 것”이라며 “우리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실의 입장과 달리 최종현학술원의 조사에서 우리 국민들은 ‘한반도 유사 시에 미국이 핵 억지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는가’에 대해선 ‘그렇지 않다’(60.8%)는 부정적 답변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지난해의 48.7%보다 12.1%포인트 높아진 것이다. 학술원은 이러한 변화는 한국 국민의 미국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졌다기보다는 북한 핵무기 개발의 고도화와 광폭해진 도발 자세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했다.
韓, 독자적 핵 개발 필요 응답 ‘51.4%’
무엇보다 한국이 독자적 핵 개발이 필요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51.4%가 ‘그런 편’으로, 21.4%는 ‘매우 그런 편’으로 응답했다. 핵무장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72.8%에 달한 것이다. 지난해보다는 4%p 정도 낮아졌지만 여전히 높은 지지율이다.
특히 ‘북핵 위협에 가장 효과적 대응책’으로 한국의 핵 잠재력 강화(20.6%)를 가장 많이 꼽았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식 핵 공유와 유사한 미국 핵 공유(20.4%), 한국형 3축 체계 강화(18.7%), 한반도에 전술 핵무기 재배치(16.2%)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일각에선 독자 핵 무장이 어렵다면 영국의 핵무기 재무장 계획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미국의 영국 레이큰히스(Lakenheath) 공군기지 시설 현대화 사례처럼 주한미군기지에 접목하는 것이 북한의 핵 억제 방안으로 가장 실효성이 높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과거 주한미군의 전술핵이 배치됐던 오산과 군산 공군기지 내 핵무기 저장시설을 현대화 또는 개조하거나, 전국 수십 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주한미군기지에 핵무기 저장시설을 신축해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유사시 순환·임시·고정적으로 배치하는 환경을 구축하면 북한의 핵위협을 더 효과적으로 억제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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