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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진짜' 이유가?

[커튼콜 인문학]

뮤지컬 '영웅' 보기 전 알아야 할 '동양평화'

안중근 옥중 집필한 동아시아 3국 관계 논문

한중일 3국 공동 은행 설립 등 혁신적 제안 하기도






[커튼콜 인문학]은 뮤지컬과 연극 무대 위에 오른 작품의 배경지식을 스토리 형식으로 소개합니다.

*주의사항: [커튼콜 인문학]은 스포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하세요.


스산한 바람의 기운이 느껴지는 자작나무 숲. 안중근 의사와 독립 투사들이 한 쪽 손에 피를 흥건히 묻힌 채 비장한 표정으로 외칩니다.

우리의 함성이 잠자는 숲을 깨우듯, 어두운 이 세상 깨우리. 잊지 말자 오늘 -단지동맹-

뮤지컬 ‘영웅’의 한 장면. 사진=연합뉴스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이유, 일본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


뮤지컬 ‘영웅’의 한 장면. 사진=연합뉴스


안중근 의사와 독립 투사들이 왼쪽 네 번째 손가락 첫 관절을 잘라 혈서로 독립을 위해 헌신할 것을 다짐하는 ‘단지동맹’을 재현한 뮤지컬 ‘영웅’의 첫 장면입니다. 뮤지컬 ‘영웅’만큼 ‘역사가 스포’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작품이 또 있을까요. 단지동맹부터 이토 히로부미 저격, 뤼순 감옥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비극적인 순간까지… 값비싼 티켓을 구매한 이들 중 그의 인생사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많은 관객들이 ‘스포 당한’ 부분은 1막까지입니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진짜 이유, 안중근이원하는 조선의 미래 등을 다루고 있는 2막의 내용은 아마 아직 ‘스포 당하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을 거예요. (사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사형을 당하기까지 벌어진 일은 뮤지컬 ‘영웅’ 덕분에 더 많이 알려졌다고 봐도 무방하다.)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본 관할 법원으로 넘겨진 안중근은 ‘피고는 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는가’라고 묻는 판사에게 ‘이토 히로부미는 동양의 평화를 방해하는 자였다’라고 말합니다. 또한 ‘나는 그의 죽음을 통해 동양의 평화를 이루고자 했다. 일본, 중국, 한국이 협력하여 서구 열강의 침략에 맞서야 한다, 동양의 평화를 위해,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죠.

동양평화, '내 아들들의 손은 기도를 하는 손이 되는 것


‘동양의 평화를 위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바로 뮤지컬 ‘영웅’의 2막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동양평화론’입니다. 안중근은 사형 선고를 받은 후 감옥에서 ‘동양평화론’를 집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글을 완성하기 위해서 공소권을 청구해 기간 내 집필을 마치려 했지만 일제가 이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역사학자들이 동양평화론 앞부분과 안중근이 역시 옥중에서 남긴 ‘안응칠 역사’, 그의 공술 내용 등을 토대로 정리한 바에 따르면, 동양평화 구상은 한 마디로 ‘한중일 삼국이 협력해 경제적·군사적 협력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아시아판 유럽연합(EU)’라 할 수 있습니다. 안중근은 동양 삼국이 경제적으로 협력해 각국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어요. 또 외세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동양 삼국이 군사적으로 협력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한 마디로 동아시아 3국이 정치, 경제, 군사 모든 면에서 서로 끈끈하게 얽혀 공동의 이익을 위해 나아가면 안정과 평화가 찾아올 것이란 주장이죠. 감상적이고 이상적인 주장 같지만, ‘동아시아 3국의 공동은행 설립’ 등 무척 혁신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뮤지컬 ‘영웅’ 속에서는 안중근과 간수 치바 도시치가 함께 부르는 넘버 ‘동양평화’에서 이같은 안중근의 생각이 은유적으로 드러납니다.

나의 손은 주먹을 불끈 쥐고 이토를 쐈지만 내 아들의 손은 기도를 하는 손이 되는 것. 그것이 동양평화요.낮을 밝힌 저 태양이 달에게 자릴 내주듯 밤을 지킨 달이 다시 자리를 양보하듯 꽃이 지면 그 자리에 열매가 맺히듯 자연의 섭리 그대로 어울려 사는 것. 서로서로 인정하며 평화롭게 사는 것. 서로 자리를 지키며 조화롭게 사는 것. 그게 바로 동양평화 더불어 사는 지혜. 작은 평화 큰 평화가 어찌 다를 수 있겠는가. 오순도순 둘러앉아서 소소한 일상 서로 얘기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평화. 서로서로 인정하며 평화롭게 사는 것. -동양평화-

자신은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지만 아들과 후세대는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지 않고, 손을 잡고 앞으로 걸어나가길 바라는 성인과도 같은 마음, 그것이 바로 안중근의 ‘동양평화’입니다.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안중근, 동양평화는 언제쯤


조마리아 여사 역할을 맡은 원로 배우 박정자.사진=연합뉴스


안중근은 1910년 2월 14일 사형을 선고 받았지만 항소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어머지 조마리아 여사는 아들에게 “떠나갈 시간이 왔구나. 두려운 마음 달랠 길 없지만 큰 용기 내다오”라며 그의 큰 뜻을 지지했고, 어머니의 뜻에 따라 안중근도 항소를 포기했어요. 그는 사형을 앞두고 아들들에게 ‘내가 죽은 뒤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면 고국으로 반장해다오’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이는 아직도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그의 시신이 사형 집행 후 뤼순 감옥의 죄수 공동 묘역에 묻혔고, 일제가 정확한 매장지를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008년 남북 정부가 광복 이후 함께 처음으로 유해 공동 발굴을 하기도 했지만 이마저도 실패했습니다.

그토록 부르짖었던 ‘동양평화’ 역시 아직 완전히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지난 2008년 한중일 3국은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 경제협력, 관계 개선 등을 논의하기 위해 매해 한중일 정상회의를 열기로 했습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아세안+3 정상회의 외에 3국 정상회의를 제도화할 것을 제안하면서 이뤄진 결정입니다. 안중근이 동양평화를 집필하고 약 100년 만에 그의 뜻을 실현할 만한 조직이 탄생한 셈이죠. 한중일 정상회담의 가장 큰 목표는 보건, 교육, 환경, 재무, 교통, 문화, 스포츠, 경제 및 통상, 재난 관리 등에서 협력을 지속하는 것인데요. 역대 정상회의에서는 북핵문제, 한중일FTA, 대만 문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등 3국이 처한 공통의 문제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이뤄졌어요. 하지만 정상들이 모여 각국의 이익만 주장하다 보니 한중일 3국의 정치적·경제적 반목을 완전히 해결하는 데는 역부족입니다.

안중근과 치바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그가 감옥에서 전한 따뜻하고 위대한 마음은 국경을 넘어 화합을 남겼습니다. 뮤지컬에도 등장하는 간수 치바 도시치는 처음 안중근을 이토를 죽인 살인자로 생각하며 증오했지만, 점차 그를 마음으로 존경하게 됩니다. 안중근은 죽기 30분 전 ‘위국헌신 군인본분’ (爲國獻身 軍人本分), ‘나라를 위해 몸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라는 뜻을 담은 유묵을 그에게 전했고, 치바는 사형 집행 직전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지어보낸 수의를 들고 와 그에게 입혀 줬다고 해요. 일본인 간수를 향한 존중은 그가 그토록 부르짖었던 상대 국가를 향한 ‘존중’이기도 합니다. 치바는 은퇴 후 고향으로 돌아가 죽을 때까지 안중근의 유묵과 영정을 모시고 그를 추모했습니다. 존중은 도 다른 존중으로 이어져 화합과 평화를 이뤄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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