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날수록 건물은 낡고 기계는 녹슬기 마련이다. 사업장 내의 건물이나 설비도 주기적으로 유지보수를 하여야 한다. 일반적으로 기업은 건설업을 영위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유지보수공사를 직접 수행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외부 공사업체에 공사를 맡기곤 한다.
문제는 이러한 공사 중에 산업 재해가 발생할 경우 누가 책임을 지는가이다. 바꿔 말하면 건설공사 중에 그 작업을 수행하는 근로자에 대한 안전관리의 책임을 누가 지는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은 ‘명칭에 관계없이 물건의 제조·건설·수리 또는 서비스의 제공, 그 밖의 업무를 타인에게 맡기는 계약을 말한다. 따라서 원칙적으로는 건설공사를 맡기는 계약도 도급에 해당한다.
다만, 산업안전보건법은 ‘건설공사를 도급하는 자로서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관리하지 않는 자’를 건설공사발주자라 하여 도급인과 구분하고 있다. 건설공사발주자는 건설공사를 도급 받아 수행하는 업체의 근로자들에 대하여 도급인이나 해당 공사업체(사업주)가 부담하는 것과 같은 구체적인 안전조치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
위와 같이 건설공사발주자를 구분하는 기준은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관리하는지이다. 문언상으로는 이해가 가지만, 실제로는 어떤 경우에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관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을지 모호하다.
이에 관하여 인천지방법원은 A공사에 대한 2023년 6월 제1심 판결에서 해당 공사의 성격 및 내용, 공사 장소의 관리 주체, 해당 공사의 상시적·정기적 사업 여부, 공사 관련 부서 등 조직의 유무, 공사 관련 인력 및 예산 규모 등을 기준으로 A공사가 도급인에 해당한다고 봤다. 위와 같은 기준에 비추어 A공사가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관리하였다고 보기에 충분하므로, 공사업체 근로자에 대한 안전관리의무를 부담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위 사건의 항소심 법원은 A공사가 건설공사의 시공을 수행할 법령상의 자격과 전문성이 있는지를 주된 기준으로 삼아 A공사를 건설공사발주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해당 공사업의 자격도 갖추지 못한 A공사가 시공을 주도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항소심 판결에 따르면 공사를 맡긴 주체가 사업에 필수적인 시설의 공사를 맡기고 인력 및 규모 면에서 공사업체보다 월등하더라도, 해당 공사를 수행할 수 있는 자격과 전문성이 없으면 건설공사발주자에 해당하여 구체적인 안전관리책임을 지지 않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사건은 현재 상고심 계속 중으로 향후 대법원의 판단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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