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라는 단어의 무게는 역시나 무거웠다. 변덕스러운 날씨와 컨디션 난조 등 여러 난관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최초 단일 대회 4연패 도전에 나선 박민지(26·NH투자증권)의 앞을 막아섰다.
하지만 박민지는 무서운 집중력으로 묵묵히 샷을 날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경기 내내 추격해 오는 경쟁자들과 대기록 달성에 대한 부담이 짓눌렀지만 흔들릴지언정 쓰러지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홀에서 우승을 확정 지으며 아무도 이루지 못한 대기록의 주인공으로 우뚝 섰다.
박민지는 9일 강원 양양의 설해원 더 레전드 코스(파72)에서 끝난 셀트리온 퀸즈 마스터즈(총상금 12억 원)에서 3라운드 합계 13언더파 타를 적어 3타 차의 짜릿한 우승을 차지했다. 시즌 첫승이자 2023년 6월 BC카드·한경 레이디스컵 이후 약 1년 만에 기록한 우승이다.
상금은 2억 1600만 원. 박민지는 우승 상금에 더해 대회 주최사 셀트리온이 대기록 달성을 응원하기 위해 준비한 특별 포상금 3억 원까지 받게 되면서 한꺼번에 5억 1600만 원이라는 거액의 상금을 챙기게 됐다. 특별 포상금은 KLPGA 공식 기록엔 반영되지 않는다.
박민지가 세운 단일 대회 4연속 우승 기록은 지금까지 KLPGA 투어의 전설적인 선수들도 세우지 못한 대기록이다. 고 구옥희(1982년), 박세리(1997년), 강수연(2002년), 김해림(2018년)과 박민지 등이 가지고 있던 3연패가 최고 기록이었다.
이번 대회에서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이자 통산 19승째를 거둔 박민지는 역대 최다승 공동 1위인 고 구옥희와 신지애(20승)에 1승 차로 바짝 따라붙게 됐다. 이번 우승으로 끌어올린 페이스를 유지해나간다면 이 부문 1위 등극도 시간 문제로 보인다. 시즌 12번째 대회가 치러진 가운데 8번째 출전에서 마수걸이 우승을 거둔 그는 시즌 상금 27위에서 6위(3억 5916만 원)로 껑충 뛰어올랐다.
이날 공동 2위 그룹에 2타 차 단독 선두로 3라운드를 시작한 박민지는 경기 중반까지 좀처럼 타수를 줄이지 못했다. 수 차례 버디 기회를 놓치던 그는 10번 홀(파4)에서 최대 위기를 맞았다. 2m 남짓한 거리의 파 퍼트를 놓치며 1타를 잃고 2위 그룹에 추격을 허용했다. 하지만 위기 속에서 박민지는 강했다. 이어진 11번 홀(파3)에서 홀 1m 거리에 붙이는 완벽한 티샷으로 버디를 뽑아 만회했다. 이어 14번 홀(파5)에서는 6.6m 퍼트를 성공시켜 2위 그룹과의 격차를 2타 차로 벌렸다. 우승을 향한 9부 능선을 넘은 박민지는 마지막 18번 홀(파5)에서 버디를 낚아내며 대기록 달성을 자축했다.
우승 후 박민지는 “4연패를 정말 하게 될 줄 몰랐고 부담감을 안은 한 주였는데 해냈다는 게 스스로 대단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포상금을 제외한 대회 우승 상금을 전체 기부하려고 한다. 아파보니까 아픈데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하는 분들이 많은 걸 알게 돼 병원, 어린이, 독거노인과 관련된 곳에 기부하려고 한다”고 했다.
박민지의 기부 결정에 그의 메인 스폰서도 화답했다. NH투자증권은 4연패를 기념하고 기부의 뜻을 존중하는 취지에서 우승 인센티브 금액에 지원금을 추가해 우승 상금과 동일한 금액을 선수에게 지급하기로 했다.
이제영·전예성·최예림이 10언더파로 공동 2위에 올랐고, 노승희와 박보겸 등이 9언더파 공동 5위로 뒤를 이었다. Sh수협은행 MBN 여자오픈에 이어 2주 연속 우승을 노렸던 상금 1위 이예원은 6언더파 공동 13위로 경기를 마쳤다. 이예원은 첫날 공동 3위에 올랐으나 2라운드에서 3오버파로 부진한 끝에 아쉽게 이번 대회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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