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요리는 전 세계 요리 중 최고봉으로 꼽힌다. 요리의 수준 뿐 아니라 격식, 즐기는 분위기 등 모든 측면에서 그렇다. 프랑스인들에게 프랑스 요리는 단순히 식사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인생 그 자체이기도 하다. 세 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하는 프랑스의 정찬 식사는 준비 시간과 식사 후 살롱에서 이어지는 교류 시간을 포함하면 하루 전체가 식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프렌치 수프’는 프랑스 요리를 소재로 인생의 의미와 인간관계믜 미묘함을 절묘하게 풀어낸 수작이다. 재료 준비부터 조리, 플레이팅까지 수많은 시간과 기법들이 동원되는 섬세하고 다층적인 프랑스 요리는 20년이 넘는 긴 시간 함께 파트너로 일해온 요리사 외제니(줄리엣 비노쉬)와 도댕(브누아 마지멜)의 관계와 삶을 닮았다.
프랑스인들이 생각하는 결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결혼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프랑스인들에게는 결혼보다 동거나 파트너 문화가 훨씬 익숙하다. 결혼을 한다는 것은 인생의 모든 것을 내주겠다는, 프랑스인들의 정신인 자유조차도 맡길 수 있다는 뜻이다. 영화 속 도댕도 몇 번이나 외제니에게 청혼했지만 거절당했고, 그럼에도 그는 계속해 청혼한다. 이들이 살아 온 삶의 양식과 쌓아 온 신뢰는 어쩌면 부부 그 이상이지만, 벽을 넘기는 어렵다.
영화는 이들이 오랜 세월 천천히 쌓아온 관계를 요리 과정 전체를 보여주는 것으로 표현한다. 긴 시간 동안 대화 없이 이어지는 요리 시퀀스는 대사 없이도 이들의 관계를 마음 속으로 짐작케 한다. 실제로 과거 부부기도 했던 두 배우가 연기해 미묘한 감정이 더욱 절절히 드러난다.
프랑스 요리의 격변기였던 19세기 말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요리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마리-앙투앙 카렘으로부터 시작된 초기 프랑스 정찬의 모습부터 오귀스트 에스코피에의 누벨 퀴진으로 변화하는 요리상을 만나보는 재미가 있다. 특별출연하기도 한 세계적인 셰프 피에르 가니에르의 감수를 받은 요리들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권력자가 대접한 초호화 요리에 맞서 도댕은 영화의 원제기도 한 ‘포토푀’(프랑스 가정식 소고기 스튜)를 내놓는다. 어찌 보면 소박해 보일 수 있지만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야 중층적인 깊은 맛이 나온다는 점에서 영화의 메시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미식가가 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다”는 영화 속 대사는 인생도 그렇다는 사실을 함의한다.
‘그린 파파야 향기’로 제46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받은 트란 안 훙 감독의 신작으로, 제76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19일 개봉, 1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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