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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으로 보내온 전율…희열과 긴장이 한번에

[리뷰 - 임윤찬 리사이틀]

'전람회의 그림' 새 역사 써

연주 기법 다양하게 선보여

신동빈·서경배 등 기립박수

지난 7일 저녁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연주에 몰입하고 있다. /사진 제공=목프로덕션




1951년 미국 뉴욕 카네기홀의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2001년 프랑스 남부 오랑주 고대극장의 예브게니 키신…….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하면 생각나는 명연주들이다. 여기에 또 다른 ‘전설의 실황'이 탄생했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손 끝을 통해서 관객들은 희열과 긴장감 끝에 몰랐던 갈증을 해소했다.

지난 7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진행된 임윤찬의 피아노 리사이틀 2부. 1부에서 연주된 차이코프스키의 ‘사계’를 통해 러시아의 계절감을 온 몸으로 느낀 후 인터미션 내내 여운에 젖어있던 관객들은 곧바로 새로운 시공간으로 이끌렸다.

임윤찬은 입장하자마자 곧장 피아노 앞으로 걸어가 의자 밑으로 빨려 들어간 턱시도의 긴 꼬리자락을 빼지도 못한 채 연주를 시작했다. 임윤찬의 가이드로 화가 빅토르 알렉산드로비치 하르트만의 유작 전시회를 함께하는 느낌이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림들이지만 듣는 순간 그려졌다. 심장을 강타하는 첫 음 외에도 보이지 않는 심상을 그려지게 하는 임윤찬의 또 다른 재능이었다.

5/4박자와 6/4박자가 마디마다 바뀌며 곡 전체에서 다른 느낌으로 변주되는 ‘프롬나드(산책)를 거쳐 ‘난쟁이(제1곡)’. 잡으려 하면 사라지는 것 같은 선율의 생생한 느낌에 집중하다 보면 이윽고 새로운 무게감과 빛깔의 프롬나드가 다가온다.



/사진 제공=목프로덕션


두 사람이 대화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제6곡은 거만한 부자와 비굴한 가난뱅이의 목소리가 겹쳐지는 데서 장관을 이뤘다. 이어 시장에서 벌어지는 수다를 표현하는 제7곡은 시장 좌판의 앞줄과 뒷줄을 파도타기처럼 오가던 대화가 사방으로 증폭하는 순간에 어떤 희열감을 느끼게 했다. 한 마디 말 없이도 그의 내면이 쏟아낸 폭포같은 대화들은 관객들의 모골을 송연하게도 했고 맥박을 높이기도 했다.

이윽고 천둥우가 치기 직전의 혼돈스러운 하늘을 마녀가 휘젓고 다니는 것처럼 변덕스러운 리듬과 정신을 아찔하게 하는 제10곡이 지나고 제11곡에서 전체 곡을 관통하는 ‘프롬나드(산책)’ 선율이 다시 등장한다. 제11곡의 하이라이트에서 빠르게 옥타브를 오가는 왼손을 촘촘하고 든든하게 맞춰주면서 긴장감을 증폭시키는 오른손과 이어 거침 없이 절정을 향해 가는 임윤찬의 화려한 움직임에 평소에 둔해진 동체시력을 가동해야 했다.

흔히 별 생각 없이 썼던 ‘건반을 치다’라는 서술어도 임윤찬의 연주 이후에는 새로운 서술어를 떠올릴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 소중한 대상을 어루만지듯 건반을 쓰다듬고 토닥이고 튕기던 그는 절정에서는 때로는 우박처럼, 천둥 번개처럼 건반을 내려 꽂기도 했다. 건반을 치는 방식에도 수백 겹으로 이뤄진 밀푀유처럼 다양한 방식이 있다는 것을 체감하게 했다.

허공을 가르는 손가락마저 공기의 속성을 바꿔 소리를 내는 것 같아 관객들은 박수를 치기 전에 일제히 일어섰다. 마치 간절한 제의를 끝마친 것 같은 임윤찬이 이마를 덮은 머리카락에 맺힌 땀을 닦아내며 크게 인사를 했다. 가슴을 채워주는 연주에 관객들은 임윤찬이라는 솔로 피아니스트와의 동시대성에 감사했다. 객석에서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도 기립 박수를 보내며 앙코르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모든 것을 쏟아낸 그의 공연 후에 남는 감정이 공허가 아니라 또 다른 채움에 대한 기대와 충만함이길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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