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은 제가 갑니다. 여러분은 쪽팔린 선배가 되지만 마십시오. 18일입니다. "
박용언 대한의사협회(의협) 부회장이 10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이다. 의협이 오는 18일 전국의사가 참여하는 궐기대회와 집단휴진을 예고한 가운데 회원 의사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하려는 취지로 보인다. 이날 오후 6시 현재 해당 게시글에는 200개에 가까운 '좋아요'와 함께 "응원한다", "이게 나라냐" 등의 댓글이 달렸다.
임현택 의협 회장은 이날 전체 회원에게 보낸 서신에서 "정부가 또다시 위헌·위법적인 행정명령으로 휴진신고명령을 발령하고 행정처분을 예고하고 있다"며 "우리가 왜 의료 노예처럼 복지부가 휴진을 신고하라고 하면 따라야 합니까?"라고 적었다. 이어 "하루 휴진을 막기 위해 15일 업무정지를 내릴 정도로 셈을 못 하는 정부의 노예화 명령이 있다면 100일 넘게 광야에 나가 있는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되기 위해 저는 기꺼이 의료 노예에서 해방돼 자유 시민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해당 서신에는 "정부가 총칼을 들이밀어도 제 확고한 신념은 꺾을 수 없다. 결코 비겁한 의료 노예로 굴종하며 살지 않을 것이다. 회원 여러분, 당당한 모습으로 18일 오후 2시 여의도공원에서 만납시다"라고 독려의 메시지도 담겼다.
서울의대와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전공의 행정처분 완전 취소를 요구하며 오는 17일부터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제외한 외래 진료와 정규 수술을 무기한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데 이어 의협이 18일 집단휴진과 총궐기대회 개최를 예고하면서 의정갈등이 한층 고조되는 분위기다. 정부는 의협의 집단휴진 계획에 대해 '진료명령'을 내리고 법 위반을 검토하며 강경대응으로 맞서고 있지만 의료계 집단행동은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전국 40개 의대 교수들이 참여하는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은 오는 12일 정기총회를 열고 '전체 휴진'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이미 대한의학회와 전국 20대 의대 교수가 모인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가 의협과 행동을 같이 하겠다고 밝힌 만큼 전의교협도 18일 집단휴진에 동참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의료계 집단행동이 전국 의대들로 확산할 수 있다는 의미다. 삼성서울병원 등이 속한 성균관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의협 결정에 따라 18일 하루 휴진하고 이후 정부 방침에 따라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려대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무기한 휴진' 등 한층 강도 높은 대응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의협이 전날(9일) 열린 전국의사대표자회의에서 선포한 대로 투쟁의 서막이 열린 셈이다.
이런 분위기는 앞서 지난 2020년 의료계 총파업 당시 개원의 휴진 참여율이 낮았다는 그쳤던 것을 의식한 것으로 읽힌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전일(9일) 브리핑에서 “2020 의료계 총파업 당시 개원의 휴진 참여율이 10% 미만에 그쳤다”고 발언했다. 실제 사흘간 이뤄진 의료계 2차 집단휴진 기간 동안 의원급 의료기관의 휴진율은 첫째날 10.8%가 최고치였다. 마지막날에는 6.5%까지 떨어졌다. 동네의원이 파업하면 파급력이 크지 않은 데다 자칫 환자들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가 집단행동 참여를 주저하는 배경으로 지목된다. 4년 전 의협의 총파업 당시 대학병원 전공의 중 70%가량이 집단행동에 참여하며 개원의들과 대조를 이룬 것도 이런 이유가 주효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대다수 전공의가 이미 3달 넘게 병원을 비운 만큼 의대 교수들의 참여율이 이번 의료계 집단행동의 중요한 동력으로 떠올랐다는 분석도 나온다. 의대 교수들이 참여하는 단체들은 대부분 의협의 단체행동에 동참하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다만 실제 파업 참여율이 어느 정도일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대한의학회는 10일 서울 중구 콘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2024 학술대회 개최 관련 기자간담회를 열고 "집단 휴진까지 가지 않도록 그 전에 문제가 타결됐으면 좋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진우 대한의학회장(연세의대 세브란스병원 정형외과 교수)은 10일 집단휴진에 대한 입장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집단 휴진까지 가지 않도록 그 전에 문제가 타결되길 바란다"며 "칼자루는 정부가 쥐고 있지 않나. 지금이라도 (정부가)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준다면 얼마든지 논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평생 환자 진료와 연구만 했던 사람으로서 환자 곁을 떠난다는 것이 안타깝다"며 "저 뿐 아니라 대다수 의사들이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특히 중환(중증 환자)을 맡고 있는 교수라면 병원을 비우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시민사회는 의료계의 집단휴진 계획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가 복귀 전공의에 대한 면허정지 행정처분 절차를 중단하겠다고 양보했는 데도, 환자를 볼모로 불법행동을 하려고 한다는 이유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이날 성명에서 "넉달간의 의료공백 기간 어떻게든 버티며 적응해왔던 환자들에게 휴진 결의는 절망적인 소식"이라며 "서울의대 비대위가 '정부의 무도한 처사가 취소될 때까지 진료를 미뤄달라'고 했지만, 정부만 아니라 의사들 역시 무도한 처사를 자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도 이날 입장문을 통해 "의사집단의 끊이지 않는 불법행동에 대해 공정위 고발 및 환자피해 제보센터 개설 등을 검토할 예정"이라며 "환자 안전을 위협하는 의사의 불법 진료거부는 정당화될 수 없으며 즉각 철회돼야 한다. (정부가) 불법행동 가담자에게는 선처 없이 엄정 대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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