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고금리에 따른 양극화로 ‘부유층 증세’가 세계 주요국 선거의 핵심 공약으로 떠오른 가운데 지지층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영국에서는 역내 외국인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증세가 영국의 매력을 떨어뜨려 이들을 떠나게 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반면 미국에서는 부자들 사이에서 ‘부자 증세’ 지지가 나와 눈길을 끈다.
22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다음 달 4일 영국 총선을 앞두고 집권 보수당과 제1야당인 노동당 모두 외국인 부유층에 대한 세금 혜택 폐지를 약속하면서 ‘부자 외국인’들이 영국을 떠날 채비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영국은 외국인이 사실상 영국에 거주하더라도 법적 거주지를 해외에 둔 ‘비거주자(non-dom)’라면 외국에서 벌어 역내 들여오지 않는 소득에 과세하지 않는 ‘송금주의 과세제’를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총선을 앞두고 노동당이 이 제도의 폐지를 제안했고 보수당도 ‘비거주자 면세안’의 단계적 폐지를 발표했다. 양당 중 어느 곳이 돼도 증세가 약속된 상황에서 부유한 외국인들이 이탈리아와 스위스·몰타·중동 등으로 이주를 고려한다는 것이다.
FT는 정당의 이런 결정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경제·정치적 불확실성, 안보 우려와 함께 영국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런던에 거주했던 한 프랑스 투자자는 FT에 “연간 10만 유로(약 1억 4800만 원)를 내면 국외 소득세를 면제해주는 이탈리아 밀라노로 내년 초 이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15년간 런던에 살아온 한 억만장자 기업인도 아부다비로 옮길 예정이다. 영국 세무 당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자신을 비거주자로 신고한 사람은 6만 8000명에 이른다. FT는 좌파 노동당의 승리가 유력한 상황에서 일부 영국인도 증세 부담에 나라를 떠날 계획이라고 전했다.
한편 미국에서는 주택 이외의 자산가치가 100만 달러 이상인 백만장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의 공약인 ‘억만장자 증세’를 지지한다는 결과가 나와 주목을 받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올 3월 연두교서에서 억만장자들이 최소 25%의 세금을 내야 하고 소득세 최고세율도 37%에서 39.6%까지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애국적인 백만장자’라는 이름의 고액 자산가 모임의 의뢰로 여론조사 기관 유고브가 총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60%가 ‘1억 달러(약 1391억 원) 이상 소득에 대한 세금을 현행 최고세율인 37%보다 높이는 방안’을 지지했다. 91%는 “극심한 부의 집중으로 동료 시민 중 일부가 정치적 영향력을 매수할 수 있다”는 의견에 동의했고 60%는 “빠르게 확대되는 불평등을 민주주의의 중대한 위협”으로 봤다. FT는 이에 대해 “극단적인 부유층에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려는 대통령의 계획이 미국의 중상류층에게 잘 작용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FT는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고소득층의 지지가 꾸준하다고 설명했다. FT가 매월 미시간대 로스경영대학원과 미국 유권자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조사에서도 소득이 10만 달러(약 1억 3190만 원) 이상인 최고 소득 계층 가구는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할 가능성이 다른 임금 집단보다 꾸준히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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