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시의 한 제지공장에서 설비 점검 중 사망한 19세 노동자가 생전 기록했던 메모장이 공개돼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A씨는 지난 16일 오전 9시 22분쯤 전주시 팔복동의 한 제지공장 3층 설비실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바닥에 쓰러진 상태로 발견됐다.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숨졌다. 입사한 지 불과 6개월 만이었다.
유족 측은 지난 20일 고용노동부 전주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철저한 진상규명과 사측의 공식사과를 촉구하면서 A씨가 생전에 남겼던 메모장을 공개했다.
메모장에는 업무 관련, 자기계발, 재테크 등 앞으로의 목표에 대한 내용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A씨는 ‘경제-통장 분리하기’라는 항목에서 ‘생활비 통장’ ‘적금 통장’ ‘교통비 통장’ ‘경조사 통장’ 등 필요한 통장 목록을 꼼꼼히 분류했다. 아래에는 자신의 현재 자산과 필요한 생활비를 계산한 뒤 매달 목표 저축액을 기입하기도 했다.
언어 공부에 대한 목표도 있었다. 영어와 일본어를 공부하겠다며 ‘인강(인터넷 강의) 찾아보기’ ‘독학기간 정하기’ 등 세부 계획을 세웠다. 카메라 촬영법 배우기, 편집 기술 배우기, 악기 배우기 등 취미 생활에 대한 목표도 꼼꼼하게 나열했다.
'2024년 목표'라고 적은 부분에는 '남에 대한 얘기 함부로 하지 않기' '하기 전에 겁먹지 않기' '기록하는 습관 들이기' '구체적인 미래 목표 세우기' '친구들에게 돈 아끼지 않기' 등이 담겼다.
'인생 계획 세우기'에서는 '내가 하고싶은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기' '경제에 대해 공부하기' '편집 기술 배우기' 등이 적혀있다.
A씨의 메모는 다수의 온라인 커뮤니티와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확산했고, 많은 네티즌은 A씨의 메모에서 열정적인 사회초년생의 모습이 엿보여 고인의 죽음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네티즌은 “빛나고 어여쁜 한 사람의 세상이 끝나버렸다는 게 너무 슬프다”고 했고, 다른 네티즌도 “저렇게 열심히 잘 살려고 했던 친구였는데 눈물 난다”고 했다.
한편 유족은 신입사원인 A씨가 홀로 작업을 수행한 점과 안전 매뉴얼이 명확히 지켜졌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유족 측 박영민 노무사는 기자회견에서 “종이 원료의 찌꺼기가 부패하면서 황화수소 등 유독가스가 발생할 수 있는 현장이었는데도 왜 설비실에 혼자 갔는지, 2인1조 작업이라는 원칙은 왜 지켜지지 않았는지 알고 싶다”고 밝혔다.
김현주 전 전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 대표는 “A씨는 평소 엄마에게 본인은 1, 2층에서 일하고 3층은 고참 선배들이 작업해 안전하다고 말했다고 한다”며 “하지만 그날 A씨는 3층에 올라가서 작업을 하다 쓰러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성실하고 밝은 모습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한 19세 청년이 왜, 어떻게 사망하게 되었는지 노동부는 특별근로감독 등을 통해 철저히 조사해 달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제지공장 측은 과로사 정황이 없고, 유독가스 등 위험성 또한 확인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A씨가 사고 전 열흘 동안 하루 8시간만 근무했고, 사고 후 이틀에 걸쳐 유해가스 농도를 측정했지만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A씨가 홀로 작업을 진행한 점 또한 2인1조가 필수인 업무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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