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충돌 등 ‘2개의 전쟁’이 발발했을 때 일부 국제 정세 전문가들은 다음의 약한 고리로 한반도와 대만을 지목했다. 미국·유럽과 중국·러시아라는 2개의 거대한 맨틀이 움직이면 결국 맨틀이 맞닿아 있는 곳에서 지진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그 지역이 바로 한반도와 대만이라는 분석이다.
기우라는 진단도 많았지만 이 같은 예상은 점차 현실로 다가오는 분위기다. 북한과 러시아가 사실상의 군사동맹을 맺고 초밀착하면서 신냉전이 한반도 안보 지형을 격랑 속으로 밀어넣고 있다는 우려는 커지고 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은 26일 “북러가 1961년 합의한 ‘유사시 자동 군사개입’을 부활시켰다는 것은 한반도 상황이 냉전이 한창이던 시기로 되돌아갔다는 뜻”이라며 “한반도가 신냉전의 당사자가 된 것이고 신냉전의 불길이 한반도로 번졌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최근 국가안보전략연구원도 보고서에서 “북러 초밀착으로 글로벌 정세와 한반도 문제의 지정학적 연동성이 심화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달 19일 북러 정상회담 후 회견에서 서방의 러시아 본토 위협을 언급하며 “북한과 군사기술 협력 진전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 등은 자국 무기를 활용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는 것을 제한적으로 승인했는데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를 치면 러시아는 북한과 군사기술 협력을 하겠다는 뜻을 시사한 것이다.
‘미국 등 서방 무기의 러시아 본토 공격→러시아의 북한에 대한 첨단 군사기술 이전→한국의 우크라이나 살상 무기 지원→러시아의 기술이전 가속화→북한 핵·미사일 고도화’의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북한이 우크라이나전에 파병을 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실제 이뤄진다면 미국은 반발하고 이의 반대급부로 러시아가 북한의 지원을 강화하는 구조도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팻 라이더 미 국방부 대변인은 25일(현지 시간) 북한의 전쟁 파병 가능성에 대해 “주시하고 있다”며 “만약 내가 북한의 인사관리자라면 군을 (러시아군의) 총발받이 및 우크라이나에 대한 불법 전쟁에 보내는 선택에 의문을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반도가 러시아의 ‘성동격서(주된 목표의 반대쪽을 먼저 치는 공격 전술)’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걱정거리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당초 판단과 달리 어려움을 겪는 러시아가 북한을 부추겨 북한이 강도 높은 도발을 한다면 미국의 관심이 분산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전에서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다. 남 원장은 “러시아의 큰 그림으로서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북한 입장에서도 미국 대선 전 도발을 통해 미국의 주의를 환기시킬 유인이 충분하다.
북러 초밀착으로 대북 제재가 느슨해질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이미 러시아는 올 3월 유엔 대북 제재가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감시하는 전문가 패널의 임기 연장에 반대표를 던져 패널 임무를 종료시켰다. 여기에 북러 정상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은 “미국 주도의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는 개정돼야 한다”며 “북한과 함께 정치적 동기에 따른 제재에 맞설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북 제재 이완은 결국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로 연결된다.
문제는 이 같은 흐름이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러시아는 지난해 3월 2016년 이후 처음으로 수정한 장기 대외정책 기조인 ‘러시아 연방 대외정책 개념’에서 “미국과 서방이 세계화라는 미명 아래 아시아·아프리카 국가들을 착취해왔다”고 지적하고 “글로벌 사우스(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개발도상국) 국가들을 반제국주의와 반식민지주의 이념으로 결속하겠다”고 선언했다. 앞으로도 서방과 대치를 이어갈 것이고 이는 한반도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는 “한반도 안보 상황이 녹록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면서도 “(북러 조약으로) 북한은 안보 상황을 이용해 군사력을 더 강화하려 할 것이고 우리도 북한의 군사 위협 증가에 따라 한미일 안보 협력과 한미 동맹의 확장 억제를 더 강화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