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까지 다 가봤는데 인파가 평소의 3분의 1 수준이에요”(환자), “당장 저번주와 비교해도 사람이 절반 정도로 줄었어요. 교수님들 휴진한다고 하니까 저번주에 미리 약 타가는 분들이 많았는데 그런 영향인 듯 합니다.”(병원 자원봉사자)
27일 오전 10시경 기자가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암병원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유독 한산한 원무과 대기석이었다. 좌석 절반 이상이 비어 있었고 연이어 방문한 다른 수납·접수 창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과별로도 폐암센터, 두경부암센터 등만 만원을 이뤘고 나머지 과들은 절반 정도 자리가 차면 많은 수준이었다. 어떤 과는 전체 24개 대기석 중 중 1~2석만 차있어 사실상 ‘전멸’ 수준이었다.
고요한 병원 분위기 역시 이질적이었다. 귀가 아플 정도로 소리가 울리고는 했던 평소와 달리 이날만큼은 환자를 호명하는 간호사들의 목소리, 내원자들이 조곤조곤 대화하는 소리들이 마치 백색소음으로 느껴질 정도로 낮게 깔렸다.
이날부터 세브란스병원 교수들이 ‘무기한 휴진’에 돌입하면서 병원을 찾는 환자도 눈에 띄게 줄어든 모습이었다. 다만 휴진 참여 여부는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것인 만큼 실제 참여는 제한적이다. 이날 병원에서는 의료공백으로 인해 큰 혼란이 빚어지진 않았지만 사태 장기화를 우려하는 환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대장암 환자인 남편의 보호자로 병원에 왔다는 서모(77)씨는 “남편이 지난 5월 31일 수술을 받았고 이후 오늘까지 두 차례 교수님 진료를 봤다”며 “진료 차질은 없지만 항상 불안하고 정부·의사 모두에게 속상하다. 우리야 뭐 약자니까 하는 수 없이 잘 되기만을 바라고 있다”고 토로했다.
폐암 환자인 남편과 동행한 50대 여성 이모씨 역시 “진료는 문제 없이 보고 있지만 답답하고 불안하다. 의사와 정부 둘 다 엉망진창이라 생각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다만 휴진과 관련해서는 “서울대병원이 무기한 휴진을 철회한 만큼 세브란스도 며칠 하다가 포기하지 않겠느냐”며 크게 걱정하지 않는 눈치였다.
2주 전에 진행한 피검사 결과를 보기 위해 부산에서 올라왔다는 대장암 환자 조모(52)씨는 “당장 전날까지도 담당 교수 휴진 여부에 대해 아무런 공지가 없어서 와야 하는지 고민했다”며 “다행히 담당교수님은 휴진을 안 하시지만 같은 과에 다른 교수님들 몇 분은 참여하신다고 들었다”고 했다.
5년차 대장암 환자인 조 씨의 본업은 간호사다. 현재는 부산 2차병원에서 일하고 있지만 병이 생기기 전까진 세브란스병원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환자이자 간호사로서 의정갈등에 대한 입장을 묻자 조 씨는 “투병 5년차에 접어들어서 망정이지 급성기 환자였다면 정말 많이 불안했을 것 같다”면서 “이번에도 만약 휴진하면 병원 앱으로 제공되는 결과지를 통해 혼자 판독해야 하나 이런 생각까지 했다. 나는 간호사라 그나마 가능하지만 환자들은 이런것조차 못하지 않느냐. 환자 입장에선 절대 있으면 안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의대 증원에 대해선 정부가 한 발 물러설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조 씨는 “간호사들은 임금격차, 간호법 등 문제 때문에 대부분 의대 증원을 찬성한다”면서 “그럼에도 시스템도 안 갖춰진 상황에서 정부가 2000명을 밀어붙이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본다. 점차적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병원에서는 이날 외래 진료가 전년 동기 대비 5∼10%가량 감소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노조 역시 비슷하게 10%가량이 감소한 것으로 잠정 집계했다. 다만 일부 과에선 교수 절반 가까이가 자리를 비우기도 했다. 대장암센터 앞에서 만난 한 자원봉사자는 “(대장암센터) 교수님 6명 중 4명만 나오셨다고 들었다”며 “선생님들이 휴진하니 환자도 눈에 띄게 줄어든 모습”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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