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군 당국이 지난 26일 북한의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를 ‘실패’라고 규정하자 북한이 다탄두 능력 확보를 위한 ‘성공적’ 시험이었다고 주장하며 엇갈린 입장을 내놓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북한은 “개별기동 전투부(탄두) 분리 및 유도조종시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하였다”며 1개에 여러 개의 탄두가 들어가는 다탄두 미사일 시험에 성공했다고 주장하는 진위에 관심이 쏠린다. 북한이 다탄두 능력 확보를 위한 미사일 시험 발사 진행했다고 공개한 것은 처음이다.
북한이 말하는 개별기동 전투부는 영어 약자로 ‘MIRV’라 불리는 ‘다탄두 각개목표 재돌입체’를 뜻한다. 하나의 미사일 동체에 실려 발사된 여러 개의 탄두가 각기 개별적인 목표를 향하면서 대기권으로 재진입한다는 것으로, 미사일 1개로 여러 발을 쏜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북한 주장에는 여러 허점이 존재해 ‘기만·과장’으로 보인다는 게 군과 전문가들의 일치된 평가였다. 일본 당국도 관측한 북한 미사일의 정점 고도는 100㎞ 수준이었는데 이 또한 MIRV를 실험하기에는 너무 낮다고 분석을 내놓았다. 북한이 주장하는 ‘개별 탄두 분리’보다 합참이 파악한 ‘공중 폭발’이 사실에 가까울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북한의 다탄두 탄도미사일이 실패했지만, 중요한 대목은 만약 북한이 다탄두 ICBM을 개발해 미국으로 발사한다면 워싱턴DC와 뉴욕 등 여러 도시를 1발의 미사일로 타격할 수 있다는 의미여서 매우 큰 위협이라는 점이다. MIRV는 미국의 핵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미니트맨-Ⅲ’에 처음 적용됐다. 미국은 미니트맨-Ⅲ를 최대 400여 발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탄두 탄도미사일 얼마나 위력적인 무기 체계일까. 다탄두 미사일은 동시에 여러 표적을 공격할 수 있어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 과정에 중요한 단계로 여겨진다. 지난해 10월 말 국방부는 한미 핵협의그룹(NCG)의 국방당국 대표인 허태근 국방정책실장과 비핀 나랑 미 국방부 우주정책수석부차관보 등 양국군 관계자들은 반덴더그 기지에서 실시된 미니트맨-Ⅲ 시험 발사를 공동 참관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군이 미니트맨=Ⅲ의 시험 발사를 직접 참관한 것은 2016년 2월 이후 7년 9개월 만으로 역대 두 번째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전략폭격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함께 3대 전략무기(Nuclear Triad)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3대 전략무기(핵전력)은 ‘천조국’, 즉 국방 예산이 1000조 원에 달하는 미국의 최종병기로, 이 가운데 미니트맨-Ⅲ는 발사 버튼만 누르면 60초안에 미사일이 보관된 지상의 사일로를 박차고 나와 목표지점으로 날아가는 미 핵전략의 핵심으로 꼽힌다.
우리가 제공 받을 수 있는 미국의 핵우산 3대 전략 중 가장 빨리 동원할 수 있는 무기다. 발사 명령 후 지구상 어느 곳이든 30분 내 타격이 가능하다. 캘리포니아에서 평양까지도 30분 내 도달할 수 있다. 미국은 450발이 넘는 미니트맨-Ⅲ를 확보하고 있고 본토 깊숙이 숨겨져 은밀히 관리하고 있어 적이 파괴하기 어려운 존재다.
미니트맨-Ⅲ를 운용하는 부대는 현재 공군지구권타격사령부(Air Force Global Strike Command)다. 이 사령부가 전략 핵폭격기까지 운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미니트맨-Ⅲ 이전에 ‘미니트맨-Ⅰ’, ‘미니트맨-Ⅱ’가 있다. 미니트맨-Ⅲ는 1970년 첫 실전 배치해 1976년 7월 17일 마지막 배치를 마쳤다. 무려 50년이나 된 매우 낡은 무기 체계다. 그럼에도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탄도미사일로 꼽힌다. 이는 미니트맨-Ⅲ가 개량형으로 사거리, 위력, 정확도 모두 늘었고, 특히 가장 큰 장점은 다탄두 미사일이라는 점이다.
1962년 실전 배치한 미니트맨-Ⅰ은 미국이 처음으로 고체 연료 로켓엔진을 사용했다. 이전에는 액체 연료를 사용해 연료 충전에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고체 연료 로켓엔진 개발에 성공하면서 언제든 원하면 곧바로 발사할 수 있게 됐다. 당초 미니트맨-Ⅰ은 열차 발사형으로 개발할 계획이었지만 막대한 비용과 안전 문제로 폐기됐다. 800여 발을 생산했고 1969년 퇴역했다.
1965년에 개량형인 미니트맨-Ⅱ를 개발해 실전 배치했다. 당시 800여 개를 생산했지만 미국과 소련 간 전략무기감축협정에 따라 450여 발로 감축했다가 1994년 모두 퇴역했다.
이후 1970년에 미니트맨-Ⅲ를 후속 모델로 개발했다. 두 미사일과 다른 가장 큰 특징은 다탄두 미사일로 3개의 탄두가 탑재돼 대기권에 진입할 때 각기 다른 목표물을 향해 따로 날아가는 강점을 지녔다. 하지만 미러 전략무기감축협정에 따라 탄두를 1개만 탑재하게 됐다.
그러다 미국은 2020년 8월 미니트맨-Ⅲ 시험 발사에서 3발의 모의 탄두(재진입체)를 탑재하겠다고 발표했다. 미러 협정이 2021년 2월 협정이 종료될 예정이라 다탄두 탑재 준비를 한 것이다. 하지만 미러는 다시 협정을 5년 연장하기로 합의해 현재는 미니트맨-Ⅲ는 다시 탄두 하나만 탑재하고 있다.
가장 큰 특징은 미사일의 맨 앞부분에 열핵폭탄(수소폭탄)이 내장된 Mk-12 혹은 Mk-21/SERV 재돌입체가 탑재된다. 정해진 임무에 따라 하나 혹은 세 기의 재돌입체가 장착된다. 이 안에 들어가 있는 W78과 W87 핵탄두의 위력은 335에서 300 킬로톤에 달한다.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위력인 15킬로톤과 비교하면 20배 이상의 위력을 지녔다.
원형공산오차 즉 ‘명중률’도 미니트맨-Ⅲ는 가공할만한 정밀도를 자랑한다. Mk-21/SERV 재돌입체의 원형공산오차는 120m 이하로 적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사일로를 정밀 타격할 수 있다. 사거리가 1만3000km에 달하고 미국 와이오밍주, 노스다코다주, 몬태나주 세 곳의 기지에서 운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대 마하 23의 속도로 비행해 30분 내에 입력된 목표물에 대한 핵 공격을 할 수 있다.
미니트맨-Ⅲ 발사는 미국의 핵무기 운용 원칙인 ‘2인 원칙’에 따라 두 명의 미사일리어(Missileer), 즉 운용요원에 의해 이뤄진다. 미 대통령의 핵무기 발사명령인 EAM(Emergency Action Message) ‘긴급행동지령’을 접수하면 2명의 운용요원은 메뉴얼에 따라 발사암호를 입력하고 발사절차를 진행한다.
매 과정마다 복명복창을 통해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고 발사버튼도 2명이 동시에 눌러야 미사일이 점화 된다. 지상통제소외에 미 전략사령부 소속의 미 해군 E-6 머큐리 공중지휘통신기도 10여 발의 미니트맨=Ⅲ 발사할 수 있는 통제장치가 설치됐다. 지상과 동일하게 2명의 운용요원이 탑승한다.
50년 넘게 운용된 미니트맨-Ⅲ는 2002년부터 2012년까지 70억 달러를 들여 수명 연장과 함께 업그레이드를 실시했다.
러시아, 중국, 북한 등은 신형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꾸준히 개발해 여러 종류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실전 배치하고 있다. 러시아만 경우 10종류가 넘는다. 반면 미국은 오직 미니트맨-Ⅲ 한 종류만 배치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도 트라이던트-ⅡI 잠수함 발사 대륙간 탄도미사일 한 종류만 수십 년간 운용 중이다.
미국이 신형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을 아예 포기했던 것은 아니다. 1986년 12월 실전 배치한 ‘LGM-118 피스키퍼(Peacekeeper)’가 있다. 미국이 가진 최고의 기술력을 동원한 대륙간 탄도미사일이다. LGM-118 피스키퍼는 MIRV 미사일로, W87/Mk-21 핵탄두가 설치된 10개의 재돌입체를 장착할 수 있다. 정확도 또한 미니트맨 III의 2배 이상 높아졌다. 열차로 발사할 수 있도록 개발을 시도하지만 예산 문제로 취소했다.
미국은 총 50기를 배치했다. 그러나 1993년 미국과 러시아간에 조인된 군축 협정인 제2차 전략무기감축협정 ‘STARTⅡ’ 조약에 따라감축대상으로 지정돼 2005년 9월 19일에 해체됐다. LGM-118 피스키퍼에서 분리된 500여 개의 W87/Mk-21 핵탄두는 미국이 가진 유일한 지상발사 ICBM인 미니트맨 미사일로 옮겨졌다.
LGM-118 피스키퍼가 퇴역한 이유 중에는 요구된 사정거리 목표 도달 실패와 함께 가장 결정적인 가격 문제가 발생했다. 미니트맨-Ⅲ의 10배에 달하는 가격과 엄청난 유지비가 발목을 잡았다. 게다가 LGM-118 피스키퍼에 들어가는 관성유도장치 AIRS의 가격은 미니트맨-Ⅲ 1발의 가격에 달하는 등 고가의 무기 체계고 제작 시간도 오래 걸리는 문제가 단점으로 꼽혔다.
결국 잠수함 발사 대륙간 탄도미사일(SLBM) ‘트라이던트-Ⅱ’ 개발과 소련 해체까지 겹치면서 LGM-118 피스키퍼는 의회의 버림을 받았고 러시아와 체결한 전략무기감축협정의 제물이 되면서 2005년까지 모두 폐기됐다.
2029년 핵 위력 더 센 ‘LGM-35A’로 교체
이후 미국은 2010년대 중반부터 차세대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을 시작하고 있다. 2030년 이후에 미니트맨-Ⅲ를 대신할 차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인 GBSD(Ground Based Strategic Deterrent)가 등장할 예정이다
‘센티넬’(LGM-35A Sentinel)로 명명된 새 ICBM은 지난해 첫 시험 비행을 마쳤고 오는 2029년부터 미군에 인도될 예정이다. 실전 배치된 지 50년이 넘은 미니트맨-Ⅲ(LGM-30A) ICBM이 드디어 퇴역하는 셈이다. 지금의 미니트맨-Ⅲ 보다 크기는 작지만 화력과 정밀도가 향상됐고 대기권 재진입체 속도도 빨라져 적의 요격은 한층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지상에서 ICBM을 교란하는 행위를 막는 ‘항재밍’ 성능도 갖췄다. W87-1 핵탄두를 탑재하는데 위력은 475kt(킬로톤·1kt은 TNT 1000t 폭발력)에 달한다. 미니트맨-Ⅲ에 탑재되는 W87 기본형(300kt)보다 무려 175kt가량 더 센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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