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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하루]1884년 7월 4일 프랑스 국민이 미국에 자유의 여신상을 선물하다

최호근 고려대 사학과 교수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영화 중 ‘대부’가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 비토 콜리오네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에 살던 영화 속 소년 비토는 고향을 떠나 긴 항해 끝에 뉴욕에 입항한다. 이 장면에 오가는 배들 사이로 ‘자유의 여신상’이 등장한다. 1900년을 전후한 시점이다. 일자리를 찾거나 전쟁을 피해 목숨을 부지하려는 유럽인들이 미국에 도착할 때 여객선의 둥근 유리창을 통해 바라보던 모습이 바로 자유의 여신상이다. 홀로코스트의 참화 속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을 반긴 것도 엘리스섬의 이민국 관리소와 이 동상이다.

부의 상징 맨해튼에서 멀리 보이는 자유의 여신상은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MADE IN USA)’가 아니다. 프랑스 국민 성금으로 프랑스에서 제작돼 뉴욕까지 운반돼 왔다. 배경이 재밌다. 남북전쟁 때 북군을 지지한 프랑스의 역사가 라블레가 미국 땅에 의미 가득한 독립 기념물을 프랑스 국민이 세우자고 제안하면서 사업이 시작됐다. 설계는 명성 자자한 바르톨디가 맡았고 에펠탑 설계자 귀스타브 에펠도 참여했다. 들라크루아의 그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 동상의 모티브가 됐다. 하지만 얼굴만큼은 바르톨디의 어머니를 모델로 삼았다.

대대적인 모금을 위해 1878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청동으로 만든 머리상이 먼저 전시됐다. 동상이 완성된 후 1884년 7월 4일 파리에서 미국 사절이 참석한 가운데 기증식이 열렸다. 높이 46m, 무게 225톤의 동상이 214개의 조각으로 분해돼 프랑스 군용선에 실렸다.



1885년 6월 17일 뉴욕 항구에 입항한 여신상은 미국인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기단부는 미국인의 모금으로 제작됐다. 1886년 10월 28일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제막식이 거행됐다. 1924년에는 자유의 여신상이 국립기념물로 지정됐고 1956년에는 동상이 자리한 베들로섬의 이름이 아예 ‘자유의 섬’으로 바뀌었다. 오른손에는 횃불을, 왼손에는 독립선언서를 들고 있는 이 아름다운 청동제 동상은 어느덧 미국을 상징하는 중심 기념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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