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회계사·변리사·세무사·관세사 등 전문 자격 시험에서 공무원들에게 자격증을 자동 부여하거나 일부 과목 시험을 면제해주는 특례가 앞으로 사라질 전망이다. 지금은 국가 전문 자격 176종 가운데 15종에서 공직 경력자에게 시험의 전 과목 또는 일부 과목을 면제해주는데, 면제 과목에서 80%를 넘는 과락률을 기록할 정도로 시험이 어렵게 나오기도 하며 ‘공무원 특혜’ 아니냐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앞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일반 국민의 76%는 특례 폐지에 찬성했지만 공무원의 79%는 반대했다. 4일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이런 내용을 담은 ‘국가자격시험 제도·운영 과정의 공정성 제고’ 방안을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에 권고했다. 관계 부처들은 권고를 수용해 법률을 개정하기로 했다. 대상은 감정평가사·경비지도사·공인노무사·공인회계사·관세사·법무사·변리사·보험계리사·세무사·소방안전관리자·손해사정사·행정사 등 15개다.
이들 15개 자격 시험은 공직 경력자에게 1·2차 시험의 전 과목 또는 일부 과목 시험을 면제해주고 있다. 5급 이상 공무원 또는 금융감독원에서 대리급 이상으로 감사 업무를 5년 이상 하면 회계사 1차 시험 전 과목이 면제되는 식이다.
국세청에서 국세 행정 업무를 10년 이상 하면 세무사 1차 시험 전 과목이, 5급 이상 직급으로 5년이 넘거나 20년 이상 세무 공무원으로 일할 경우 2차 시험 과목 일부도 면제된다. 소방공무원으로 일정 기간 근무한 사람은 아예 시험을 치르지 않고 소방안전관리자 3급~특급 자격을 받는다.
그런데 이 공직자 면제 과목에서 대규모 과락 사태가 발생하며 청년층의 반발이 일었다. 2021년 9월 치러진 58회 세무사 2차 시험이 대표적이다. ‘세법학 1부’ 과목에서 응시자 3962명 중 3254명(82.1%)이 과락에 해당하는 점수를 받아 탈락했는데, 이에 분노한 세무사 수험생들이 관련 감사를 촉구하며 시위를 벌였을 정도다. 당시 시험에서 최종합격자 706명 중 세무공무원 출신은 151명(21.4%)에 달했다. 이전 3년간 평균 비율(2.8%)보다 여덟 배 많은 규모다.
정부는 내년 6월까지 관련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실제 폐지는 국회에서 법 개정안이 통과하면 이뤄진다. 김태규 권익위 부위원장은 “정파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사안은 아니라 (야당의) 동의를 얻는 데는 큰 문제가 없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다만 법무사 시험 특례는 폐지되지 않을 수도 있다. 행정부가 아닌 법원·헌법재판소 소속 공무원에게 주어지는 특례여서다. 권익위 관계자는 “행정부와 달리 법원과 헌재는 특례 폐지에 동의하지 않았다”며 “특례 폐지를 제안하는 데 그쳤다”고 전했다.
앞서 권익위가 2022년 9월 일반 국민 643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선 76%가 공직 경력자에 대한 전문 자격시험 특례에 반대한다고 했다. 반면 같은 기간 공무원 13만754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선 79%가 전문 자격시험 특례가 전부 또는 일부라도 존치되기를 바란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권익위는 파면·해임 등 징계처분 받은 자들도 공직경력 인정 대상에서 제외하라고 권고했다. 공직에서 퇴임한 전문 자격사가 일정 기간 이전 소속 기관과 관련한 업무를 맡지 못하도록 하는 근거 규정도 마련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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