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9월 강남 일대에서 마약에 취한 채 차량을 몰다가 도주치사, 특수협박 등 범죄를 저질러 사회적 공분을 산 속칭 ‘롤스로이스남’과 ‘람보르기니남’에게 마약류를 불법 투약해 준 의사 두명이 구속됐다.
4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마약범죄수사대는 의료용 마약류 또는 전신마취제 ‘에토미데이트’를 의료 외 목적으로 불법 투약해 온 의원 2곳 관계자 16명과 투약자 26명 등 총 42명을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 등으로 입건했다고 밝혔다. 이 중 각각 롤스로이스남 신모(28)씨와 람보르기니남 홍모(30)씨에 마약류를 투여한 의사 A씨와 B씨는 구속됐다.
의사 A씨에 대해서는 신모씨의 약물 운전이 예견되는 상황에서도 신모씨를 퇴원시켜 의료법상 ‘환자의 안전한 귀가’ 등의 관리 의무를 의행하지 않은 혐의(업무상과실치사)도 추가 송치 결정했다.
의사 A씨와 간호조무사 3명, 행정직원 3명 등 병원 관계자 7명은 2022년 8월부터 2023년 11월까지 1년 4개월간 A씨가 개설한 의원에서 미용 시술을 빙자해 수면 목적 내원자 28명에게 수면마취제 계열의 마약류 4종을 1회당 30~33만 원을 현금·계좌이체로 받아 549회에 걸쳐 투약, 총 8억 5900만 원을 취득한 혐의(마약류관리법 위반)를 받는다.
이들은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눈을 피하기 위해 타인 명의로 진료기록부를 작성하거나 식약처장에게 마약류 투약 기록을 거짓 보고하고, 압수수색에 대비해 진료기록을 수정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의사 B씨 등 병원관계자 9명은 약사가 아님에도 2019년 9월부터 2023년 9월까지 4년간 B씨가 개설한 의원에서 수면 목적 내원자 75명에게 1회 투여당 10~20만 원을 현금·계좌 이체로 받아 총 8921회(투약 횟수 기준 집계)에 걸쳐 에토미네이트 합계 4만 4122ml를 판매해 12억 5410만 원을 취득한 혐의를 받고 있다. 1일 최대 56회까지 투약한 사례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의사가 아닌 간호사, 간호조무사가 단독 투여한 혐의도 받는다.
‘롤스로이스남’ 신씨는 2022년 6월부터 2023년 8월 2일까지 14개 병·의원에서 수면 목적으로 58회에 걸쳐 본인 또는 타인 명의로 향정신성의약품을 투약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람보르기니남 홍씨는 2023년 3월부터 9월까지 서울, 부산 등 병·의원 22개소에서 미용 시술을 빙자해 수면 목적으로 36회에 걸쳐 향정신성 의약품을 투약받은 혐의, 본인의 주거지에서 케타민, 엑스터시를 투약한 혐의, 마취 약물에 취한 상태에서 자동차 운전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E씨 등 24명(28명 중 사망자 3명 및 신씨 제외)은 A의원에서 본인 또는 타인 명의를 이용해 각 5~68회 의료용 마약류를 불법 투약받은 혐의(마약류 관리법 위반), 이 중 5명은 수면마취에서 회복되지 않은 상태임에도 퇴원하자 마자 각 1회~13회 자동차 운전을 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은 롤스로이스남, 람보르기니남 사건을 강남경찰서에서 인계받아 지난 9월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 중 일부 의사가 마취제 계열의 의약품을 불법 투약한 정황을 확보하고 각각의 의원·주거지 추가 압수수색 및 관련자 조사 등을 거친 결과 각 의원에서 의사의 주도하에 장기간 불법 투약이 이루어진 사실, 수면 마취된 다수 여성 상대 성폭력 범죄 혐의 등을 밝혀냈다.
또 의사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까지 수사해 총 42명을 검거하고 의사들의 재산 합계 19억 9775만 원에 대해 기소 전 추징 보전 결정을 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의료용 마약류 사용 후 자동차 운전금지 시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며 “해외 입법례를 참고하여 법률을 개정하는 등 일반 시민이 약물운전 해당 여부를 쉽게 인식하도록 명확한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의료용 마약류는 의료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투약은 물론 용법, 용량에 따라 사용해도 쉽게 중독될 수 있어, 꼭 필요한 상황 외에는 회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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