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 장기화로 늘어난 대출을 감당하기 힘들어 연체율이 증가한 데 이어 소상공인·자영업자 폐업률까지 급증했습니다.”
소상공인연합회가 2일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가 열린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연 내년도 최저임금 동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나온 한 참석자의 발언이다. 빠르게 늘고 있는 임금 체불은 사업장이 영세할수록 더 심한 상황이다. 이 사업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저소득층이 많아 임금 체불을 둘러싸고 ‘을과 을의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4일 고용노동부의 지난해 사업장별 임금 체불 규모 통계에 따르면 전체 1조 7485억 원의 임금 체불 가운데 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의 체불액이 4723억 원으로 26%를 차지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대부분 영세하고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해 보호 사각지대에 있다. 5인 미만 사업장과 사업 규모 면에서 큰 차이가 없는 근로자 5~29인 사업장의 임금 체불이 가장 심했다. 이곳의 임금 체불은 6458억 원으로 36%다. 임금 체불 절반이 근로자 3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경영계에서는 이런 영세 사업장의 임금 체불 문제 원인 중 하나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누적 인상 효과를 지속적으로 지목해왔다. 전 정부는 최저임금을 저임금 근로자의 사회안전망으로 강조하면서 2018년 16.4%, 2019년 10.9% 올렸다. 영세 사업장의 어려움이 가중되자 현 정부는 근로자에게 제대로 임금을 줄 수 있는 사업장을 우선하는 정책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 흐름대로 지난해와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은 각각 5%, 2.5%를 기록했다.
하지만 정부는 임금 체불이 심각해지면서 소액 체불이라도 고의·상습이 드러날 경우 법정 구속을 원칙으로 삼았다. 임금 체불 피해 구제 제도인 대지급금 부정 수급을 막기 위한 기획 조사도 한층 강화됐다. 전문가들이 내년도 최저임금 수준이 여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 배경이다. 앞으로 임금 체불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은데 이 피해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저임금 근로자에게 몰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정부가 임금 체불 문제 해결을 위해 사업장 제재와 지원 정책을 동시에 펴고 있는 배경이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사업자대출 연체율, 부실채권 등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임금 지급 여력을 가늠하는 주요 지표가 지난해 말부터 악화되고 있다”며 “고의로 임금을 주지 않는 게 아니라 경영 악화로 인한 폐업 등 어쩔 수 없이 임금을 밀린 사업주가 늘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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