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의 주요국 선거에서 정권 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 4일 치러진 영국 총선에서 집권 보수당이 참패하고 노동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14년 만에 정권이 바뀌게 됐다. 막판 개표 결과 보수당은 하원 총 650석 가운데 121석을 얻는 데 그쳐 역대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와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장기화한 경기 침체와 고물가, 이민자 급증 등이 민심 이반을 초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7일 실시되는 프랑스 총선 2차 투표에서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범여권 앙상블(ENS)이 극우 야당인 국민연합(RN)에 제1당 자리를 내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에서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집권 민주당 내에서 최근 TV 토론에서 고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대로 가면 ‘민주당의 대선 필패’라는 위기감 때문이다.
주요국 집권당의 위기를 초래한 공통 요인으로 경기 침체와 고물가로 일자리 쇼크 등 민생 경제 악화를 불러온 경제정책 실패를 지적할 수 있다.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전 세계 공급망이 교란되고 중앙은행들의 돈 풀기가 이어지면서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고물가·고금리·실업난 등으로 서민과 중산층의 삶의 질이 떨어진 가운데 집권 세력이 무능력한 모습을 보이자 국민 여론이 싸늘하게 돌아섰다. 영국 보수당은 2010년 브렉시트를 주도해 영국 경제를 장기 내리막길로 걷게 한 데다 지난 5년 동안 총리를 네 명이나 바꾸는 등 정치사회적 혼란까지 증폭시키며 민심을 잃었다. 중도 성향의 마크롱 대통령은 경제난 속에서 개혁을 추진하다가 좌파와 우파의 지지를 모두 잃고 설 곳을 잃었다. 미국에서도 서민들은 높은 생활물가에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보수·진보·중도의 구분 없이 민생을 챙기지 못한 정권은 심판을 받아왔다. 우리나라의 여야 정치권도 경제와 민생을 최우선에 놓고 국민들과 소통하면서 정책을 펴야 한다. 경제를 살리지 못하면 민심은 한순간에 떠나고 분노를 표출한다. 표심을 얻기 위해 포퓰리즘 선심 정책에 매달리면 경제가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구조 개혁이 없으면 지속 가능한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은 불가능하다. 현장에 기반한 정교한 정책 비전과 치밀한 실행력을 갖춘 유능한 정치 세력만이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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