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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수년째 하천교량 정비 호소했는데…" 뒷짐행정에 주민들 분통

[폭우피해 충북 옥천 가보니]

불어난 강물에 상지리 10가구 침수

"수차례 좁은 강폭·교량정비 요청

재작년 가드레일 두뼘 높인게 전부

관할 떠밀기…올핸 그마저도 없어"

지자체 재정따라 하천정비 격차

한병도 의원 "예산·인력 뒷받침을"

12일 충북 옥천군 군서면 상지리에서 주민 김 모(60대)씨가 침수 피해 흔적을 가리키고 있다. 옥천=이승령 기자




“여기가 하천 폭이 엄청 좁아서 자주 물이 차올라요. 폭을 넓혀 달라고 도에 민원을 넣었는데 3년 안에 한다고 했지만 여태 하지 않고 있는 거에요”

지난 12일 폭우로 불어난 하천으로 침수 피해를 입은 충청북도 옥천군 군서면 상지리에서 수해민 김모 씨(60대)는 이번 피해는 결국 ‘인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18가구가 사는 상지리 윗마을에서는 지난 7~10일까지 이어진 폭우로 10가구가 침수 피해를 입었다.

12일 충북 옥천군 군서면 상지리 마을의 한 민가 담벼락이 범람한 강물에 무너져 사라진 채 방치돼 있다. 옥천=이승령 기자


침수 피해를 입은 마을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순식간에 민가를 덮친 강물로 집 울타리와 담벼락이 모두 쓸려 내려가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였으며 집안에는 무릎 높이의 물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집 밖으로는 거센 물살에 부서져 떠밀려 나간 교량 가드레일이 하천 한 편에 처참히 방치돼 있었고, 집 안 곳곳에는 강물과 함께 밀려온 토사의 흔적이 역력했다. 김 씨는 “세워둔 차들이 모두 쓸려 내려가 담을 치고 여기 저기로 움직인 것 같다”면서 “저기 세워둔 차가 이 집, 저 집, 저기 3번째 집 앞 포도나무까지 떠내려 갔더라”며 위급했던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12일 충북 옥천군 군서면 상지리 서화천에 인근 교량 가드레일이 방치돼있다. 옥천=이승령 기자


피해가 심각했던 상지리 윗마을 지경수 마을은 하천 건너로 금산군을 마주하는 충북도의 도계(道界) 마을이다. 인근 만인산과 금성산에서 발원해 옥천 방향으로 흘러드는 서화천(추풍천)변에 위치한 이 마을은 평소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하천 수위가 높아져 침수 직전의 상황에 처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마을 주민들은 과거 수차례 하천 폭과 교량 등 구조물에 대한 정비 민원을 제기한 바 있다. 재작년에는 ‘꿩 대신 닭’으로 하천과 도로를 구분하는 가드레일 받침대를 두 뼘 정도 높이는 작업을 했지만 올해 폭우로 급격히 불어난 강물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지난 12일 충북 옥천군 군서면 상지리에서 주민 홍성오(64)씨가 인도교를 가리키며 인도교가 물의 흐름을 방해해 물길이 범람하기 일쑤”라며 대책 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옥천=이승령 기자


마을 주민 홍성오(64)씨는 “새벽 2시 30분께 나와서 보니 다리에 물이 막혀 마을로 넘어오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하천폭도 문제지만 짧은 간격으로 서있는 2개의 교량이 물이 흐름을 방해해 범람을 부추겼다고 했다. 마을과 연하는 하천에는 충북도와 충남도를 잇는 차량 통행이 가능한 도계교와 인도교가 약 100m 간격으로 서있었다. 홍 씨는 “저 다리(인도교)가 생기고 물이 넘치는 일이 생겼다”면서 “쓸려 내려온 것들이 다리에 걸려 물길을 막고 방파제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선으로 뻗은 인도교의 설계도 지적했다. 다리를 지지하는 교각이 다리의 진행 방향에 따라 사선으로 틀어지면서 물길과 닿는 면적이 넓어져 떠내려 온 잔해들이 걸려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충북 옥천군 군서면 상지리에 위치한 도계교. 옥천=이승령 기자




도계교도 상황은 비슷했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오래된 이 다리는 30m도 채 되지 않는 좁은 강폭에도 육중한 교각을 3개나 뻗어 내리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도계교의 교각 수를 줄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오래된 다리인 탓에 안전 진단 등 민원을 제기했지만 이마저도 맞은편 금산군과의 관할 문제로 빠른 조치가 어려웠다는 것이 주민들의 설명이다. 김 씨는 “금산 사람들보다 이곳 사람들이 이 다리를 넘어 금산 쪽으로 나가는 일이 많아 충북도가 했어도 될 일”이라면서 “우리 마을과 건너 마을이 다 같은 생활권인데 관할이 주민들에게 무슨 상관이냐”고 지적했다.

12일 충북 옥천군 군서면 상지리 서화천변 도로가 무너져있다. 옥천=이승령 기자


당국의 무심한 태도는 이 뿐만이 아니었다. 상지리 아랫마을의 천변의 도로가 무너져 내리고 세월교(콘크리트 구멍을 만들어 물이 흐르게 한 소규모 교량)가 막혀 물이 그 위로 흘러 인근 깻잎밭과 인삼밭에 피해를 입혔다. 김응천 (68) 상지리 이장은 “개울이 좁아 옹벽으로 튼튼하게 만들었어야 했는데 돌망태기로 임시 조치를 하니 물이 한 쪽을 치고 반대 편을 강하게 치면서 도로가 내려 앉았다”면서 “근본 대책을 세워 달라고 했지만 토지·예산 문제로 해결이 되지 않고 있었다"고 토로했다.

12일 충북 옥천군 군서면 상지리 서화천에서 포크레인이 세월교에 낀 토사물과 잔해를 정리하고 있다. 옥천=이승령 기자


상지리 마을 주민들은 긴급 복구로 여념이 없다. 계속되는 비소식에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하천 물길을 막은 잔해물을 정리하고 침수로 엉망이 된 집안을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미 집 안에서 나온 망가진 가구들과 쓰레기들은 언덕을 이룬 상태다. 최 이장은 “트럭으로 70번은 왔다 갔다 실어 날랐다”고 했다.

폭우 등에 대비한 하천 정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은 정비와 책임이 중앙정부에서 자방자치단체로 넘어간 탓이다. 지자체의 재정상태에 따라 하천 관리에 격차가 생기는 것이다.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9일 행정안전부로부터 제출받은 ‘전국 시·도별 소하천 정비 및 피해현황’ 에 따르면 지방하천 정비가 지자체로 이양된 후 소하천 정비율이 46.5%에 불과했다. 2020년 하천 정비 사업 예산의 지방 이양이 추진된 후 3년 동안 소하천 피해 규모는 2499억 원에 달했다.

한 의원은 “소하천 정비사업은 태풍과 홍수로부터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중요한 사업이나 권한과 책임의 이양만 있고 예산과 인력의 이양이 뒷받침되지 못했다”면서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에는 큰 부담”이라고 지적했다.

어김없이 찾아온 장마철 폭우로 충북 옥천군에는 7~10일 나흘 간 총 405mm의 큰 비가 내렸다. 폭우로 인해 옥천군 관내 농경지 55.5ha가 침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특히 지난 10일 새벽 시간당 60mm의 폭우가 내린 군서면과 이원면에서 각각 17.9ha와 14.8ha의 피해가 접수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피해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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