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현지 시간) 선거 유세 도중 총격을 당해 오른쪽 귀가 피범벅이 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대피하는 상황에서도 “싸우자(fight)”를 세 번 외친 후 오른쪽 주먹을 번쩍 치켜올렸다. 지지자들에게 자신의 건재함을 알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의연한 모습에 패닉 상태에 빠졌던 지지자들은 ‘유에스에이(USA)’를 외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트럼프가 방금 대선에 당선됐다”는 외침이 무대 주변에서 들렸다고 현장에 있던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피투성이가 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먹을 공중으로 휘두르는 사진은 미국 전역으로 급속히 퍼지기 시작했다. 싱크탱크 퀸시연구소의 트리타 파르시 행정부회장은 이 사진을 두고 “2024년 대선을 규정하는 상징적 이미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향한 총기 테러가 올해 11월 미국 대선을 뒤흔들 메가톤급 변수로 떠올랐다. 섣불리 예단할 수는 없으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공화당의 결집력이 한층 강해지고 중도층에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동정 여론이 확산할 것으로 점쳐진다. 특히 민주당의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달 TV 토론 이후 인지력 논란으로 후보 자격 시비가 붙은 상황인 만큼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선 승리의 무게 추가 트럼프 쪽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국 싱크탱크 루거센터의 폴 공 선임연구원은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의 기존 지지층들이 크게 흔들리지는 않겠지만 바이든이 못 미더운 중도층에서 트럼프에 대한 동정 표심이 생길 수 있다”면서 “공화당 전당대회 이후 트럼프의 지지율이 부쩍 오를 수 있고, 이러한 흐름을 주목해야 한다”고 짚었다.
또 다른 선거 전문가는 “트럼프가 유세 중 피격을 당한 펜실베니아주는 미 대선의 최대 경합주”라면서 “전당대회 직전에 경합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선거공학적으로 트럼프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예측 베팅 사이트인 폴리마켓에서는 이날 사건 직후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이 60%에서 70%까지 크게 높아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측근 인사들은 이날 총격을 계기로 지지층의 결집을 유도하며 화살을 조 바이든 행정부로 돌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는 이날 X(옛 트위터)에 아버지가 주먹을 든 사진을 올리며 “그는 미국을 구하기 위한 싸움을 절대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공화당의 J D 밴스 상원의원은 “바이든 캠페인의 핵심은 트럼프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막아야 할 권위주의 파시스트라는 것”이라며 “이러한 레토릭(수사)이 트럼프에 대한 암살 시도로까지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8일 기부자들과의 통화에서 “트럼프를 과녁 중앙에 놓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는 소식도 공화당원들 사이에서 급속히 퍼지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으로 날을 세우던 민주당 인사들은 이날만큼은 정치 폭력을 용납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일제히 내놓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에서 이런 종류의 폭력이 있을 자리는 없다. 역겹다”면서 “이것은 우리가 이 나라를 통합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백악관은 이날 저녁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과 직접 통화를 했다고 전했다. 남편이 테러 공격을 당한 경험이 있는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도 “난 이런 종류의 정치 폭력이 우리 사회에 있을 자리가 없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고 있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안전해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민주당은 이번 사건이 대선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15~18일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리는 공화당 전당대회도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총격으로 부상을 입었음에도 자신의 ‘대관식’인 전당대회에 참석하기로 했으며 지지자들의 열광적인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려 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앞서 기독교 복음주의 모임에 참석해 각종 수사를 받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히는 등 정치적 박해를 받고 부활한 예수의 몸에 비유하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당대회 기간 자신의 부통령 후보를 지명하며 마지막인 18일에 대선 후보직 수락 연설을 하고 2기 국정 비전과 정책을 제시할 예정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피격 다음 날인 14일 오전 8시께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이번 주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리는) 위스콘신에서 연설하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며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단결하고, 강하고 단호하게 미국인의 본모습으로 악에 맞서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