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2년 만이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2022년 당시 유례없는 거래절벽으로 부동산 시장 경착륙이 우려됐지만 현재는 서울 아파트 값 상승 폭이 집값이 정점이던 전 정부 시절을 뛰어넘는다. 서울 주요 지역에서는 전고점을 뚫고 거래되는 사례가 줄지어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이 초래된 것은 정부의 정책 혼선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 정부는 2022년 출범 첫해 주택 관련 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잇따라 내놓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발(發) 인플레이션에 따른 금리 인상으로 시장에 한파가 덮치자 수요 진작을 위해 주택 담보인정비율(LTV) 등의 규제를 풀었다. 규제지역에서 LTV 비율을 40%에서 50%로 완화하고 15억 원 초과 아파트 주택담보대출도 허용했다.
문제는 공급이 뒷받침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고금리에 따른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 침체, 공사비 인상으로 주택 사업자들이 사업을 미루거나 포기하면서 공급이 위축됐다. 정부가 지난해 1월부터 올해 말까지 서울에 공급하기로 한 주택(인허가 기준) 물량은 19만 가구인데 현재까지 3만 5000가구로 목표치의 18.4%에 그친다.
정부는 공급 부족으로 집값 자극이 우려됐던 만큼 대출을 선제적으로 관리해야 했지만 되레 저출생 대책의 일환으로 신생아특례대출 등 정책금융상품을 출시해 매수를 유도했다. 전형적인 엇박자 정책이다. 설상가상으로 하반기 금리 인하 기대감에 주택담보대출 수요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올 상반기에만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이 27조 원 늘었다.
집값 급등세가 심상치 않자 정부는 이르면 이번 주 부동산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정책 대응 방향을 논의할 예정이다. 정부가 부동산 관계장관회의를 개최하는 것은 지난해 9월 이후 약 10개월 만이다.
전문가들은 ‘패닉 바잉’ 조짐을 보이는 부동산 시장 진정을 위해 수요자들에 확신을 줄 만큼 충분한 공급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지적한다. 매수 열기를 누그러뜨리는 데 좋은 입지에 충분한 주택을 공급하는 것 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수요가 꾸준한 서울과 수도권에 공급을 지속할 것이라는 시그널을 줘야 한다”며 “공사비 급등 등으로 쉽지는 않지만 공급에 신경 쓴다는 것을 시장에 보여주고 재건축 등에 대한 규제 완화 등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서울 집값을 올린 것은 정부입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내려가고 인기가 높은 신축 아파트 공급은 지연되는데 무주택자들이 집을 안 사고 버틸 수 있을까요?”
최근 불거지고 있는 서울 아파트 가격 급등 현상은 대출은 풀어주고 공급에 소극적으로 나섰던 정책 실패의 결과물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에 더해 국토교통부 장관이 “공급은 충분하다” “집값 상승은 일시적”이라는 안일한 인식을 드러내면서 시장의 불안심리는 더욱 증폭됐다. 결국 집값 상승 전망치를 나타내는 서울 주택 매매 시장 소비심리지수는 올 6월 133.0을 기록해 주택 시장이 과열됐던 2021년 9월 이후 최대치를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하반기 기준금리 인하로 시장이 과열되기 전에 강력한 공급 대책을 통해 집값 안정화 시그널을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현 정부의 주택 공급 실적은 당초 목표치의 반타작이다. 서울경제신문이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9일 국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정부는 2024년까지 101만 가구(인허가 기준)를 공급하기로 발표했지만 실적은 51만 3000가구로 50.7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수도권 공급 실적은 ‘낙제점’에 가깝다. 2024년까지 수도권에 56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계획했으나 실제로는 23만 1000가구로 41.2%에 그쳤다. 특히 서울은 목표치인 19만 가구 대비 3만 5000가구로 18.4%에 그쳤다. 비수도권은 2024년도 목표 대비 30.8%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공사비 인상 등으로 민간은 물론 공공 분야의 공급까지 진행이 더디다”며 “공급 부족이 집값을 끌어올리고 있지만 정부가 대책을 내놓지 않아 시장의 불안심리가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은 당장 내년부터 공급 절벽이 심화된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2025~2027년 수도권 아파트 입주 물량은 23만 4660가구로 2022~2024년 입주 물량(44만 6595가구)의 52.5% 수준에 그친다. 특히 서울의 2026년 입주 물량은 3255가구로 2025년의 13.6% 수준에 불과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 5월 기준 서울 주택 인허가와 착공 실적은 전년 동기보다 각각 35.6%, 2.9%씩 준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서울과 수도권 공급 물량의 60% 이상을 담당하는 재건축·재개발의 속도를 높여야 공급 물량을 빠르게 확보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올해 3월 기준 서울시 정비사업 추진 구역은 690곳으로 재개발 247곳, 재건축 165곳, 소규모 정비 278곳 등이다. 하지만 공사비 인상에 따른 분담금 갈등,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등의 규제 등으로 정비사업의 속도는 느리다. 호갱노노에 따르면 착공 허가를 받은 서울 정비사업장은 현재 11 곳에 불과하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서울 집값을 잡겠다고 외곽 지역에 아무리 공급을 늘려도 서울 집값은 잡히지 않는다”며 “노른자 땅인 서울 구도심의 주택 공급을 활성화하지 않으면 희소성 때문에 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김헌동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도 최근 서울 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사장은 “서울 곳곳에는 50년 이상 된 단독주택과 연립주택들이 많다”며 “노후 계획도시의 재정비보다 서울 낙후 지역을 먼저 개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 매매 수요를 분산시킬 수 있는 1기 신도시 재건축과 3기 신도시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특히 3기 신도시의 경우 공사비 인상 등에 따른 사업성 악화 등으로 차질을 빚고 있다. 이에 공공분양 사전청약을 받았던 3기 신도시 일부 사업장에서 사업이 취소되면서 공급 물량 우려를 키우고 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공급 확대를 위해서는 3시 신도시 물량을 더욱 확보해야 한다”며 “현재 3기 신도시 물량이 35만 가구로 예정돼 있는데 60만 가구로 늘려야 한다. 이를 위해 3기 신도시 용적률을 높여 사업성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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