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하는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사상과 신념은 서로를 단순한 적을 넘어 철천지원수로 만들었다. 서로 모르는 사람 뿐 아니라 한 동네에서 죽마고우로 자란 친구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친일과 독립, 남과 북, 지주와 소작농이라는 극한으로 대립하는 가치들 속에서 비극은 계속됐고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최근 개막한 연극 ‘세상친구’는 전라도와 충청도 어느 한 마을을 배경으로 어릴 때부터 자란 친구 만석과 천석을 중심으로 격동의 시대가 불러온 갈등을 그려낸다. 극 속에서는 비극적 이야기가 이어지지만, 서로에 대한 우정을 결코 놓지 못하는 인물들과 극 중 유머를 극대화해 관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경쾌하면서도 선이 굵은 이야기의 매력에 2019년 초연된 공연은 2023년 재연을 거쳐 다시 또 무대에 올려졌다.
이번 공연에서도 TV와 스크린에서 맹활약하는 스타들의 연기를 직접 만나볼 수 있다. 10일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만난 만석 역의 김대곤, 천석 역의 최영우, 덕자 역의 이민지는 “아픈 역사에 코미디를 잘 녹여낸 연극”이라며 “잃어버린 정의와 쉬워진 인간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라고 작품을 소개했다.
빠른 템포로 긴 시간의 역사를 그려내는 만큼 배우들의 케미와 서로 간의 신뢰가 더 돋보이는 연극이다. 1983년생 동갑내기 배우이자 실제로도 막역한 관계인 둘은 극 속에서도 서로에 대한 관계를 끝까지 놓지 못한다. 만석은 소작쟁의로 수배돼 도망쳐 온 천석을 동네 밖으로 몰래 보내 주고, 천석도 입장이 뒤바뀐 만석을 보호해준다. 최영우는 “김대곤이라는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이 연극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고, 김대곤은 “그 시절의 친구는 가족과 같은 개념이었고, 만석과 천석도 그런 친구였다”고 설명했다.
신념을 뛰어넘는 사랑을 상징하는 캐릭터 덕자 역은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 들꽃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독립영화계의 대표 배우 이민지가 맡았다. ‘응답하라 1988’의 장미옥 역을 통해 대중들에게도 익숙해진 이민지는 이번이 첫 연극 도전이다. 이민지는 “너무 재밌게 봤던 작품이고, 좋아하는 배우들이 한다는데 안 끼면 후회할 것 같았다”며 “매체에서 해소되지 못한 것들을 해소하는 느낌도 있어 매일매일이 즐겁다”고 말했다.
각 배역이 멀티캐스팅으로 구성돼 N차 관람을 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민지는 “각 배우마다 특색이 달라 페어마다 다른 느낌이 난다”며 “스타일과 성격이 다 달라 여러 번 보면 다른 것을 느낄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김대곤은 “잊혀진 우리의 근대사를 일상 대화의 소재로 삼을 수 있게 되는 특별한 연극”이라며 “좋은 사람들끼리 공통된 공통된 주제로 이야기 할 수 있는 화제를 줄 것”이라고 밝혔다. 최영우는 “가족, 친구, 사랑의 의미를 되살릴 수 있는 온 가족을 위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공연은 다음달 11일까지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 플레이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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