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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하루] ‘부캐’로 전쟁놀이에 빠진 명나라 정덕제

조영헌 고려대 역사교육학과 교수


얼마 전 우리나라에 ‘부캐(부캐릭터)’라는 용어가 유행했다. 원래 온라인 게임에서 게임의 부계정을 일컫는 용어인데 미디어를 통해 ‘본캐(본래 캐릭터)’와 ‘부캐’를 구별해 ‘실존 인물이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으로도 활용됐다.

그런데 이미 지금부터 약 500년 전에 ‘부캐’로 전쟁놀이에 빠진 인물이 중국에 있었다. 바로 명나라의 국운을 바꿔놓았던 10대 황제 정덕제(正德帝, 재위 1505~1521)이다. 그의 ‘본캐’는 황제였지만 ‘부캐’는 대장군이다.

정덕제는 1518년 8월 7일(음력 7월 2일) 중요한 조서를 발표했다. 근래 북쪽에서 몽골군이 자주 침범하는데 대동(大同) 등 군사 요새의 기강이 해이해졌다고 하니, 특별히 군무를 총괄하는 위무대장군(威武大將軍) 총병관(總兵官)에 주수(朱壽)라는 자를 임명한다는 내용이다. 물론 주수에게는 군대 통솔의 전권을 맡겼다. 오늘날의 참모총장에 해당하는 중책에 임명된 주수란 누구인가. 바로 정덕제 자신이었다.



이 소식을 알게 된 관료들은 깜짝 놀라는 한편 반대 상소를 누차 올렸지만 환관의 꾐에 빠져 전쟁놀이를 즐기기로 결심한 황제의 마음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이제부터 정덕제는 자금성을 떠나 군대를 이끌고 마음대로 변경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황제라면 감히 함부로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대장군이라는 ‘부캐’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전쟁놀이로 각지를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된 정덕제는 군대만 통솔한 것이 아니라 사냥도 하고 관기(官妓)들과 마음껏 즐기기도 했다. ‘부캐’를 활용한 전쟁놀이는 남쪽에서 발생한 반란군 진압에도 활용됐다. 황제가 ‘부캐’ 놀이에 빠진 시기 명나라의 국운은 쇠락으로 기울었고 정덕제 역시 남쪽에서 물놀이 도중 물에 빠져 감기에 든 것이 화근이 돼 자금성에 돌아온 지 한 달 만에 사망했다. 500년만 늦게 태어났다면 온라인 게임에서 최고의 승자가 됐을지 모르겠지만 정덕제는 너무 빨리 ‘부캐’ 놀이에 빠져버려 나라를 쇠락으로 이끌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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