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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한땀 한땀 자수라고? [아트씽]

[류지연의 MMCA소장품 이야기(4)]

국립현대미술관 최초의 자수 전문 전시

2개월 반 동안 10만 관객 돌파…성황

당대 인기 회화 자수로 재해석한 김인숙

자수에 대한 이해 및 예술적 재평가 기회

김인숙 '다람쥐', 1949년, 섬유에 자수, 101x118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개최 중인 ‘한국근현대자수-태양을 잡으려는 새들전’이 5월 개전 이래 두 달 반 동안 약 10만 명이 관람했을 정도로 성황이다. 사실 필자가 지인들에게 “실에서부터 빛이 나는 작품을 가득히 경험해 보시라”고 이 전시의 관람을 추천했을 때 어느 남성분들은 “굳이 자수 전시는--” 이라는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으며, 어떤 분들은 부모님을 모시고 가서 추억을 나누며 좋은 경험을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느새 우리에게 ‘자수’라는 분야가 현대미술과 동떨어져 있거나 혹은 특정 성별·세대만이 누리는 사적인 영역의 취미에 한정된 분야로 인식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자수 분야만을 다룬 최초의 전시라는 점에서 한국근현대미술의 광활한 영역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있으며, 역동적으로 변화해 온 한국 자수의 다양한 면모를 소개한다는 점에서 좋은 평을 받고 있다. 담당 큐레이터는 이 전시를 2020년부터 준비했는데 코로나 상황과 덕수궁 공사로 인해 개최 시기가 연기되면서 난관을 거쳤으나, 이 역시 더 좋은 작품들을 출품하기 위한 소소한 여담으로 남겨둘 수 있을 것이다.

이 전시에 출품된 여러 자수 예술가 중에서 소개할 작품은 김인숙의 ‘다람쥐’와 ‘장생도’이다. 김인숙은 이화여대 자수과 1회 졸업생으로서 전통자수로부터 시작해 산업자수, 창작물로서 자수의 변화상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작가다. ‘다람쥐’(1949년) 는 화면 가득히 사선으로 뻗어난 소나무 등걸 위로 다람쥐 두 마리가 가로질러 가는 장면을 표현한 작품이다. 화면 전체를 차지하는 거친 질감의 소나무, 대나무, 단풍잎, 등나무 등은 제각기 다른 자수기법을 이용해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형형색색의 단풍잎과 토실토실한 다람쥐들의 모습에서 풍요로운 가을임을 알 수 있는데 특히 다람쥐는 얇게 꼰 실을 사용해 짧고 보드라운 털을 잘 표현해 귀여운 느낌이 배가되었다.

마츠바야시 게이게츠(松林桂月,1875~1963) '가을풍경' 1933년, 비단에 채색, 121x144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 작품은 익히 알려진 대로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일본화가 마츠바야시 게이게츠(松林桂月·1875~1963) 의 ‘가을풍경’(1933년)의 화면 구성에서 영감을 받았다. 마츠바야시는 화면의 전면에 사선으로 나무 기둥, 나뭇가지, 줄기를 배치하고 주변에 나뭇잎을 그려 넣음으로써 사실적이고 서정적인 화풍을 구축한 일본 근대기 대표적인 일본화가다. ‘가을 풍경’은 이왕가미술관이 수집한 작품으로서 아마도 1938년 석조전 서관 이왕가미술관 개관 이후 1945년까지 정례적인 근대미술품 전시에 소개되었을 것이다. 당시 이왕가미술관의 근대미술 컬렉션은 일본제국미술전람회, 조선미술전람회 심사위원들의 작품이나 일본의 중견 및 원로 미술가들의 대표작품이 대부분이어서 미술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참고할 만한 좋은 사례들로 여겨졌다. 아마도 김인숙은 마츠바야시의 작품을 이왕가미술관 전시에서 보았을 것인데 이를 단순화시키고 새를 다람쥐로 바꾸었다. 따라서 ‘다람쥐’의 제작 방식은 기존의 도안을 변형해서 사용하는 전통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

김인숙 '장생도', 1960년, 섬유에 자수, 112x127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장생도’(1959년)는 ‘다람쥐와’는 다른 경향을 보여준다. 1950년대 한국미술계는 추상 경향으로 점차 바뀌어 가는 중이었는데 김인숙 역시 추상화 경향을 충분히 작품에 반영하였다. 여러 차례 드로잉을 통해 형태를 단순화했고, 바탕재의 거친 질감과 황토색 색감은 목재의 재질과 함께 장승의 토속적인 특성을 반영하였으며 특히 천을 덧대거나 스티치 기법을 비롯한 각종 자수 기법을 활용해 다양한 모습의 장생을 표현했다. 작품의 반구상적인 변화는 남편인 화가 고화흠과의 예술적 교감으로 인하여 한층 더 창의적으로 변모해 갔으며 고화흠 역시 부인 김인숙의 자수작업의 영향을 받아 회화의 색채와 표면 질감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갔다. 이 두 작품은 1999년 ‘근대를 보는 눈- 한국근대공예’전에 출품을 계기로 하여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었고 이후 여러 근대미술 전시, 공예 관련 전시에 자주 출품됐다.

김인숙은 예술가이자 교육자로서의 소명의식이 컸던 만큼 본인의 작업 이외에도 자수의 산업적인 경향, 여성의 경제적 활동 등을 염두에 두고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일찍이 1963년 ‘여성과 부업: 동양자수’ 기사(경향신문 1963년12월7일자)는 동양자수를 연구한 김인숙 작가가 “새롭고 손쉬운 수법을 창안”했고, 자수를 “여성이 한 달에 5천원 정도의 수입을 올릴 수 있는 부업”으로 소개하고 있다. 작가가 1966~1967년 국제기능올림픽 심사위원, 1987년 노동문화제 심사위원, 1994년 한국산업인력 국가자격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던 만큼 산업화 시대 속 공예의 상업성에 대한 김인숙의 오랜 관심과 활동은 오늘날 새롭게 조명될 필요가 있다. 1975년 개인전으로 추정되는 방명록에는 문화계 여러 인사들을 비롯한 패션디자이너 앙드레 김, 갓 데뷔한 개그맨 김병조 등이 이름을 남겨 자수 분야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한 작가의 왕성한 대외활동과 폭넓은 교유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김인숙의 두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8월 4일까지 열리는 ‘한국근현대자수-태양을 잡으려는 새들’전에 출품됐다.

김인숙(1926~2020): 이화여대 자수과를 졸업하고 동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1958년 제 7회 국전에서 특선을 수상하였으며 1963년과 1975년 신문회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1966년부터 1985년까지 이화여대 자수과(현 섬유예술과), 성신여자대학 사범대학 가정과에 출강했다. 1966~1967년 국제기능올림픽 심사위원, 1987년 노동문화제 심사위원, 1994년 한국산업인력 국가자격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1992년부터 2003년까지 이화여대 섬유예술과 졸업생들이 결성한 ‘현수회’ 회장을 역임했다.



▶▶필자 류지연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품수장센터운영과장이다. 1996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입사해 전시기획, 미술관교육, 소장품연구, 레지던시, 서울관·청주관 건립TF 등 미술관에 관한 거의 모든 분야를 섭렵하며 29년째 미술관을 지키고 있다. 영남대 미학·미술사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영국 에식스대학교(Essex University)에서 미술관학(Gallery Studies)을 공부했으며, 서울대에서 미술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화여대 겸임교수(2022~2023)를 비롯해 인천시립미술관·대구미술관 자문위원, 서울문화재단 전시 자문위원, 예술경영지원센터 원로작가 디지털 아카이브 자문위원, 성북문화원·대안공간 공간291 자문위원, 증도 태평염전 아티스트 레지던시 심사위원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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