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천상병 시인이 쓴 ‘귀천(歸天)’의 마지막 구절이다. 웰다잉문화운동 부설 웰다잉문화연구소를 맡고 있는 강명구(71)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명예교수는 19일 줌 인터뷰에서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누구나 소풍 나들이처럼 살다가 하늘로 돌아가는 ‘웰다잉(well dying)’을 꿈꾸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며 “희망과 달리 요양원과 응급실을 수차례 오가다 의미 없이 삶을 마무리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준비하고 맞이하는 게 삶을 품위 있게 만들고 딸들의 ‘독박 돌봄’ 같은 가족과 사회의 부담이나 갈등을 줄여준다”고 강조했다.
비영리 사단법인인 웰다잉문화운동은 2018년 12월 현 이사장인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정갑윤 자유한국당 의원,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손숙 예술의전당 이사장 등 각계각층 인사가 참여한 가운데 ‘아름답게 삶을 마무리하는 문화 확산’을 모토로 발족했다. 정년 후 인생 2막을 웰다잉 전도사로 나선 그는 “우리 사회는 죽음의 문제에 대해 언급 자체를 꺼리는 경향이 강하다”며 “죽음을 회피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성찰하는 계기로 여기는 문화적 풍토를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집에서 가족이 보는 가운데 고통 없이 희망하지만…
“한국인 대다수가 원하는 좋은 죽음은 ‘내가 살던 집에서, 가족에게 부담 주지 않고,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통 없이 생을 마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인 74.8%가 병원(2020년 노인실태조사)에서 사망합니다. 집에서 삶을 마무리하는 비율은 16%에 그치죠.”
강 교수는 “좋은 죽음을 맞으려면 일찍부터 어떤 임종을 맞이할지, 어떤 치료와 돌봄을 받을지 가족이나 의료진과의 소통이 중요하다”며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우리 사회도 죽음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웰다잉문화운동 산하 온·오프라인 모임 명칭을 ‘데스(death)카페’라고 지었다.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하자는 취지에서다. “전 세계적으로 300여 개의 데스카페가 있어요. 맨 먼저 시작한 영국의 데스카페 모임 동영상에서 말기 암 환자가 ‘내려놓으니 이제는 편안해졌다’고 처음 만난 사람에게 죽음을 스스럼없이 말하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웰다잉은 비단 임종 과정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잘 죽자’는 것은 결국 ‘잘 살자’는 것입니다. 웰다잉은 생애를 정리하면서 노년을 행복하고 의미 있게 살아갈 준비를 하는 데 가치가 있죠. 그런 측면에서 웰다잉은 웰빙(well being)의 종착점이죠. 누구나 웰다잉을 실천할 수 있고 준비 과정도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그는 웰다잉 실천 방안으로 사전 연명 의료 의향서 작성과 장기 기증 같은 생명의 아름다운 마무리 외에도 사회적 관계의 마무리와 물질적·정신적 유산의 마무리를 들었다. 예컨대 유품 사전 정리와 유언장·생애보(인생노트) 쓰기, 사전 후견인 선정, 사회적 기부, 간소한 장례식 등이다. “2년여 전 생존해 계신 광복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자원봉사로 생애보를 작성해드렸는데, 그 중 한 분이 생애보가 완성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죠. 장례식 때 유족이 생애보를 조문객에게 나눠드리고 같이 읽으면서 고인을 추모할 수 있어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합니다.”
이혼 소송보다 많은 상속 소송 …유언장 문화 정착 필요
“초고령 노인은 죽음의 문제를 입 밖에 꺼내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모의 임종을 겪었거나 현재 돌보는 50~60대는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높아요. 부모 세대의 마지막 경험을 미래에 다가올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는 것이죠. 세상이 점차 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올해 주요 과제로 추진 중인 웰다잉 캠페인이 ‘유언장 쓰기’라고 했다. “선진국은 유언장 문화가 널리 퍼져 있지만 우리는 작성 비율이 1%도 안 된다고 해요. 유언장을 쓰면 생애를 돌아보고 현재의 삶에 충실할 수 있어요. 상속 관련 소송이 이혼 소송보다 많아진 현실은 유언장 없이 사망할 경우 자식들 사이에 분쟁이 빈발할 수 있다는 방증입니다.”
최근 22대 국회에 제출된 안락사(의사조력사) 허용 법안에 대해서는 뜻밖에도 “신중해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 사회가 아직 급속한 고령화의 변화에 충분히 대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매년 사망하는 30만 명 가운데 호스피스 혜택을 받는 노인들은 극소수입니다. 요양원과 응급실을 오가는 수많은 노인에 대한 말기 돌봄도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고요. 사회적 돌봄의 제도화에 많은 노력이 필요한데도 안락사를 성급히 논의하는 건 무책임하고 위험한 일입니다.”
그는 “말기 돌봄을 지역사회 단위에서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지역사회통합돌봄제도를 확대하고 내실화하는 일이 선행돼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