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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슬'보다 맑았던 영원한 배움 청년

김민기 학전 대표 위암 투병 중 별세

'아침이슬' 작곡한 포크음악계 대부

유신정권서 금지곡 지정으로 고초

1991년 공연 산실 '학전' 설립

'지하철 1호선' 등 연출가로도 성공

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고(故) 김민기 극단 학전 대표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사진 제공=학전




생전의 김민기 극단 학전 대표. 사진 제공=학전


“아침 이슬보다도 맑은 사람”(가수 조영남), “저에게 교과서 같은 분”(배우 황정민), “대한민국에 음악을 통해 청년 정신을 심어줬던 선배.”(이수만 전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

가수 겸 공연기획자 김민기 극단 학전 대표의 별세 소식이 알려지면서 문화계는 일제히 추모의 뜻을 전했다.

지난해 위암 판정을 받은 후 집에서 요양 중이던 김민기는 최근 병세가 악화돼 21일 저녁 세상을 떠났다. 향년 73세. 학전 측은 22일 서울 대학로 학림다방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고인이) 갑작스럽게 떠나셨지만 3~4개월 전부터 가족 등 가까운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하셨다”며 “학전과 관련해서는 ‘지금 끝내는 게 맞다. 나는 할 만큼 다 했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2011년 2월 극단 학전 창단 20주년을 맞아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에서 김민기가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민기의 인생은 음악과 연극 두 가지로 대표된다. 1951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대 회화과에 입학한 1970년 친구 김영세(현 이노디자인 대표)와 포크 듀오 ‘도비두’를 결성하며 음악계에 발을 내디뎠다. 이듬해 그는 당시 포크 음악인들의 사랑방이었던 명동 ‘청개구리의 집’에서 ‘아침 이슬’을 담은 솔로 1집을 발표했는데, 이 곡은 가수 양희은의 목소리로 대학생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나가게 된다.

하지만 ‘아침 이슬’의 유명세는 오히려 김민기의 삶을 고초로 이끌었다. 카투사에서 군 복무 중이던 1975년 유신 반대 시위에 모인 군중들이 ‘아침 이슬’을 부르면서 이 곡이 금지곡으로 지정된 것이다. 작곡가인 김민기 역시 연행돼 최전방 부대로 재배치됐고, 1976년에는 생계를 위해 일하던 봉제 공장에서 작곡한 ‘늙은 군인의 노래’라는 곡 역시 가사가 불건전하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는 등 1984년 대학 노래패들의 모임인 ‘노래를 찾는 사람들’ 활동을 시작할 때까지 거의 음악 활동을 하지 못했다.

서울 대학로 ‘학전’ 모습. 현재는 ‘아르코꿈밭극장’으로 바뀌었다. 서울경제DB


1987년 6월 항쟁 이후 김민기의 곡이 금지곡 신세를 벗어나면서 ‘아침 이슬’이 공개 석상에서 불리기 시작했고, 다시 김민기의 시대가 열린 듯했다. 하지만 그는 가수의 길을 접고 1991년 서울 대학로에 소극장 ‘학전(學田)’을 개관하며 연출가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학전은 올해 3월 15일 폐관하기까지 33년간 김민기가 홀로 운영한 한국 창작 공연의 산실이다. 고(故) 김광석은 학전에서 1000회 라이브 공연을 했으며 윤도현·나윤선·정재일 등이 모두 학전 출신 음악가다.



무엇보다 학전의 상징은 1994년 초연한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다. 김민기가 직접 독일 원작을 한국 정서에 맞게 번안한 이 작품은 2023년까지 8000회 이상의 공연을 올리며 7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모았다. 설경구·김윤석·황정민·장현성·조승우가 바로 ‘학전 독수리 5형제’로 불리는 ‘지하철 1호선’ 출신 배우들이다.

뮤지컬 ‘지하철 1호선’ 공연 사진. 사진 제공=학전


김민기는 ‘지하철 1호선’의 성공 이후에도 안주하지 않았고 2000년대 들어서는 미래 세대를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만성적인 재정난 속에서도 주로 어린이 대상의 뮤지컬 ‘의형제(2000)’ ‘개똥이(2006)’와 연극 ‘우리는 친구다(2004)’ ‘고추장 떡볶이(2008)’ 등을 연출했다.

소극장 학전은 올해 3월 재정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폐관했으며 최근 ‘배움의 밭’이라는 학전의 기본 정신을 이어받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어린이극 전용 극장인 ‘아르코꿈밭극장’으로 새롭게 개관했다. 김민기는 “청소년, 신진 뮤지션이 뛰어놀 수 있는 장을 마련했으면 좋겠다”며 마지막까지 미래 세대를 위한 공연에 관심을 지속해서 둔 것으로 전해진다.

2004년 학전에서 공연된 ‘우리는 친구다’ 공연 모습. 사진 제공=학전


학전 측은 2~3년간 홈페이지를 통해 고인의 작품, 공연, 대중음악 기록 등을 아카이빙하는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학전 측은 “마지막까지 선생님이 하고자 했던 게 본인이 만든 작품의 대본집인데, 글로 된 대본집뿐 아니라 무대나 음악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것을 만들고 싶어했다”고 말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과거 학림다방에서 김민기와 만난 일화를 회고하며 “선생님께서는 당연한 것을 새롭게 보려는 순수한 열정으로 세상을 더 밝게 만드셨고, 그 열정이 마음에 울림을 주었다”고 전했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이미영 씨와 슬하에 2남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4일 오전 8시.

한순천·서지혜·이승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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