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원자력 발전소 신규 건설 및 증설에 드는 비용을 전기요금에 추가해 징수할 수 있는 제도의 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탈탄소 전원’을 늘려 미래 수요 증가에 대비한다는 입장이지만, 국민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 반발도 예상된다.
24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 경제산업성은 영국의 원전 지원책인 ‘RAB 모델’을 참고해 이 같은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RAB 모델은 국가가 승인한 원전 건설 계획에 대해 건설 시작 시점부터 전기 소매회사가 건설비와 유지비를 부담하는 방식이다. 비용 회수는 이후 전기 요금에 추가해 진행하고, 건설비 증가 시에도 필요 경비로 인정되면 요금에 포함할 수 있다.
이 제도를 그대로 도입할 경우 건설비를 계약자(소비자)에게 전기 요금으로 직접 청구할지를 소매 회사가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재생에너지 100% 전기’를 선택한 소비자도 원전 건설비를 지불할 가능성이 있다. 아사히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 과거에는 발전소 건설 비용을 전기요금에 포함해 회수하는 구조가 있었지만 2000년 이후 소비자가 전력 회사를 선택할 수 있게 해 경쟁원리를 도입하는 전력 자유화가 이뤄지며 이 구조가 사라졌다. 회수 구조 부재로 채산성이 좋지 않은 발전소는 자연스레 문을 닫았고, 새로운 발전소에 대한 전력 회사들의 투자도 소극적으로 변했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안전 대책 비용이 크게 늘면서 관련 기업들의 투자는 더욱 얼어붙었다. 아사히신문이 11개 전력회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 회사가 2013년부터 10년간 기존 원전에 투자한 안전 대책 비용은 5조 8000억 엔에 달한다. 들어가는 비용은 많은데 투자 회수를 예상할 수 없으면 자금 조달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형 전력사들은 원전 지원책을 요구해 왔다.
경제산업성은 본격적으로 구체적인 제도 설계에 착수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국민 부담 증가가 예상되는 데다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어 논란도 예상된다. 원전 자체를 둘러싸고도 사용후 핵연료 처리 등에 대한 과제가 많아 반발이 확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기시다 후미오 정권은 탈탄소 흐름과 맞물려 원전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결정한 ‘GX(그린트랜스포메이션) 실현을 위한 기본 방침’에서는 “차세대 혁신 원자로의 개발·건설에 착수한다”고 명시했다. 일본 정부는 2030년 발전량의 20~22%를 원전으로 충당한다는 계획이지만, 현재 이 수치는 5.5%에 불과하다. 이에 기존 원전 재가동만으로는 목표 달성이 어려워 신규 건설 및 증설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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