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기술이 발달해도 소수자들은 여전히 사회 안에서 차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993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되며 퓰리처상·토니상·드라마데스크상을 휩쓸고 2003년 드라마로 제작돼 에미상·골든글로브를 수상한 ‘엔젤스 인 아메리카’가 다음달 6일 개막해 한국 사회 속 뿌리 깊이 박힌 소수자 혐오에 대한 진한 메시지를 던진다.
24일 서울 강북구 성신여자대학교 운정그린캠퍼스에서 열린 연습실 공개 행사에서 주인공 프라이어 역을 맡은 유승호는 “소수자들이 일상에서 받는 시선을 느껴보고자 했다”며 “진심까지 다가갈 수 없다고는 생각하지만 관련 영화와 작품도 보고 성경도 찾아보는 등 공부하고 있다”고 준비 과정을 설명했다.
‘엔젤스 인 아메리카’는 198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성소수자·모르몬교·유대인·유색인종·에이즈 환자 등 소수자들이 겪는 애환과 혼란을 그려내 평단과 대중에게 호평받았던 작품이다. 파트1과 파트2를 모두 공연하면 총 8시간이 넘게 걸리는 대작으로, 이번 시즌에서는 파트1만 공연한다. 파트1만으로도 러닝타임은 190분에 달한다. 신유청 연출은 “지루하지 않은 공연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며 “다음에는 파트2도 공연하게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미국적 색채와 문화가 많이 가미된 작품인 만큼 번역에도 공을 들였다. 영화 번역으로 유명한 황석희 번역가는 “토니 커쉬너는 훌륭한 작가이자 문장가”라며 “이 정도로 완성도 있고 멋있는 문장은 매우 드물고, 언어유희와 어순, 흐름에 집중하고 캐릭터를 살리는 데 집중했다”고 밝혔다.
캐스팅도 화려하다. 성소수자이자 에이즈 환자인 프라이어 역에는 처음으로 연극에 도전하는 유승호와 함께 배우 손호준이 낙점됐다. 10년 만에 연극에 도전하는 손호준은 “출연진들과 함께 성소수자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공부했다”며 “대본이 너무 재미있어 도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성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깨닫는 조셉의 아내이자 약물 중독자 하퍼 역에는 배우 고준희와 정혜인이 이름을 올렸다. 오랜만에 연기 활동을 재개한 고준희는 “설레는 마음으로 도전 중”이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김주호·양지원·이태빈·정경훈·방주란·태항호·민진웅 등 스타들이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또 하나의 화젯거리는 부자 관계인 중견 배우 이효정과 이유진의 동성애 연기다. 이효정은 악마 변호사 로이 콘 역을, 이유진은 조셉 역을 맡아 열연한다. 이효정은 “25년 만에 아들을 응원하기 위해 연극 무대에 섰다”며 “아들과의 상대 연기를 감내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는데 의외로 괜찮아 재미있게 하고 있다”며 웃었다. 이유진도 “아버지와 함꼐 연기하며 존경심이 더 커졌고, 소중한 기회였고 감사한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신 연출은 “원작자 토니가 말하는 세상을 그려내고 싶었다”며 “이 땅에서 지옥 같은 현실을 이겨내고 어떻게 천국을 지향하며 살 수 있을지를 생각해 왔다”고 밝혔다. 이유 없는 혐오가 끝없이 계속되는 세상에서 30년 전 작품의 메시지가 어떤 울림을 전할지 기대된다. 공연은 9월 28일까지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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