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보배·장혜진·안산 그리고 파리에서는 임시현(21·한국체대). 임시현이 한국 여자 양궁의 신궁 계보를 이으려 한다. 단체전 10연패를 이끌면서 첫 단추를 더없이 잘 끼웠고 이제 개인과 혼성 단체전까지 3관왕 위업을 향해 달린다.
임시현은 29일(이하 한국 시간) 프랑스 파리 레쟁발리드에서 끝난 파리 올림픽 양궁 여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뒤 “이제 (3관왕을 향한) 첫발을 내디뎠으니 개인전과 혼성 단체전도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를 가져오겠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경기 때와 똑같이 차분하면서도 강단이 느껴지는 각오였다.
중국과의 단체전 결승에서 임시현은 슛오프(연장)의 마지막 주자로 금메달을 결정짓는 10점을 쐈다. 첫 두 세트를 따낸 뒤 다음 두 세트를 잃는 위기가 왔을 때도 임시현의 얼굴에는 변함없는 옅은 미소가 있었고 결국 흔들림 없이 ‘극장 승리’를 완성했다. 대만과의 8강에서 다른 동료들이 7·8점으로 주춤한 사이 8발을 전부 9·10점에 꽂기도 했다. 임시현은 “우리가 열심히 노력한 게 한 발로 무너지면 안 되니까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결승 슛오프를 돌아봤다.
임시현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양궁의 길에 들어섰다. 학교 동아리 활동으로 축구와 양궁을 놓고 고민하다가 축구는 부상의 여지가 많을 것 같다는 부모님의 권유로 양궁에 입문했다. 체육고교 진학을 목표로 입시를 준비했는데 전국 대회 메달이 하나도 없어 따로 현장 실기에 응시해야 했다. 두각을 드러낸 것은 지난해다. 국가대표 1군에 처음 선발됐고 그렇게 나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에 오르며 단숨에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아시안게임 양궁 3관왕 탄생은 37년 만의 일이었다. 대단한 일이지만 워낙 잘하는 선수가 많아 언제든 국가대표 자격을 잃을 수 있는 양궁이기에 아시아 무대 제패 이후가 정말 중요했다. 임시현은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없는 사람처럼 다시 훈련했다. 197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 5관왕에 빛나는 김진호 한국체대 교수의 지도 아래 기술을 가다듬었고 올해 선발전 1위로 국가대표 1군에 또 뽑혀 생애 첫 올림픽에 나서게 됐다.
이번 대표팀의 임시현과 전훈영·남수현 모두 올림픽이 처음이고 특히 전훈영과 남수현은 아시안게임 출전도 없을 정도로 국제 대회 경험이 부족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 때 장혜진·기보배·최미선이던 멤버가 2021년 도쿄에서 안산·장민희·강채영으로 교체됐고 이번에 또 3명 전원이 바뀌었다. 양궁 국가대표는 매년 세 차례 선발전을 거쳐 뽑히며 올림픽 대표는 국가대표를 대상으로 두 차례 평가전을 치러 남녀 한 명씩을 걸러내 최종 6명이 살아남는 식이다. 이전 경력을 완전히 배제하고 오로지 기량과 컨디션만으로 올림픽 대표를 뽑으니 경험 부족의 위험이 따르기도 하지만 대한양궁협회는 그럼에도 철저하게 원칙을 지킨다. 수십 년간 구축해온 시스템과 노하우로 자타공인 금메달 유력 후보로 만들어낸다.
임시현은 아시안게임 개인전 결승에서 도쿄 올림픽 3관왕 안산을 꺾고 3관왕을 완성했다. 안산은 올해 국가대표 3차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임시현은 대표팀 에이스 타이틀에 대해 “그렇게 말씀해주시는 데 감사했다. 그런 만큼 조금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원동력이 됐다”고 했다. 이달 25일 랭킹 라운드에서 694점의 세계신기록을 써 1번 시드를 얻은 임시현은 64위 알론드라 리베라(푸에르토리코)와 8월 2일 첫판을 치른다. 혼성전에서는 김우진과 호흡을 맞춘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