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세상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
김아리랑 팀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다음 날, 나는 예약한 병원에 가서 코로나 백신 2차 접종을 받았다. 1차에서 아무런 부작용이 없었기에, 2차에서는 방심하고 말았다. 전날 저녁부터 그날 새벽까지 400페이지에 달하는 『인공낙원의 문』을 읽으며 대담 질문을 뽑았고, 아침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에서 병원에서 백신을 접종했고, 먹어두면 좋다던 타이레놀도 찬장 어디 뒀는지 찾을 수가 없어서 생략하고 말았다. 갑자기, 온몸에 툭툭 알레르기 증상이 솟고 끙끙 앓기 시작했다. 하루 지나면 가라앉는다는 항간의 경험을 철석같이 믿고 버텼다. 하지만 다음 날은 불의 도가니에 들어앉은 것처럼 온몸에 열이 올랐다. 병원을 방문해서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몇 가지 검사를 했지만, 별 이상은 없다고 했다. 주는 약을 삼키고 또 하루가 지나갔다.
아무래도 새 대담자를 찾아야 할 것 같았다. 내가 다른 이를 대신한 대담자였기에 국제예술창작재단도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어릴 때부터 여러 나라를 떠돌았던 나는 이런 상황에서 문화적 외교 관계를 무너뜨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 덕분에 잃은 것도 많지만 얻은 것도 많아 자연스럽게 습득한 외국어가 여럿 되었고, 그중에 프랑스어도 있었다. 막 번역 출간된 프랑스 책을 사서 읽고 프랑스 작가와 토론할 수 있을 대담자를 ‘반나절 만에’ 찾기에는 내가 봐도 너무 늦었다. 아리랑 씨 말대로 “지금 상황에서 이 일을 진행할 수 있는 ‘세상에서 유일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
한참 코로나 팬데믹이 기승을 부리던 때라 국제 도서전은 방역 수칙 때문에 온라인 축제를 벌인다고 했다. 그래서 영상으로 대담을 먼저 찍게 되어, 촬영을 위해 최소한의 사람들만이 모여 있었다. 아리랑 씨는 출장을 갔다며 창작재단 측에서는 노랑머리 여자 직원이 왔고, 영상 기술진, 책을 번역 출간한 출판사 편집자, 그리고 몇 명의 취재진이 모여 있었다. 대담은 영상 편집 후에 서울 국제 도서전 참가 나라들에 송출된다고 했다.
대담 화면에는 프랑스 작가의 모습은 올라오기 전이었고, 내 모습이 막 잡힌 것이 보였다. 어, 나도 모르게 작은 소리를 뱉어냈다. 미용사가 머리를 과도하게 매만져 평소와 다른 모습이기도 했지만, 백신으로 퉁퉁 부어서인지 영상에 올라온 나를 내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못생겨져 버린 모습이 속상해서 못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영상 속의 나는 분명 내가 아니었다. 내가 입을 열면 영상 속의 내가 흉측하게 일그러지며 말을 따라 했다.
그때, 화면에 프랑스 작가가 솟아올랐다. 시차 때문인지 한동안 영상이 흔들렸고, 작가는 이쪽의 상황을 모르는지 스스로 마이크 테스트를 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와이셔츠나 넥타이 없이 느슨한 모습으로 긴장감 없이 자기 행동에 몰두했다. 작품 속에서 보여주던 환각의 도시와 잔인하고 죄의식이 없는 마약 제조자들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풀어낸 작가라기에는 너무 순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드디어 그가 우리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그는 동양식으로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나는 프랑스식으로 “봉주르~!”로 시작하는 인사말을 했다. 기술진이 시작하라는 사인을 주었다.
나는 프랑스 작가에게 자신을 소개해 달라고 했고, 나는 들은 대로 통역했다. 그리고 나를 소개해야만 했다. 설핏 내가 아닌 내가 보였다. 모두 내 입을 바라보는 다급한 상황에, 내가 누구라고 말할 수가 없다고 말하고 말았다. 현장에서 대담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약간 움찔하는 느낌이었지만, 프랑스 작가는 호감의 웃음기를 띄면서 말했다.
“내가 누구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당신은 아픈 대담자를 대신해서 저를 위해 나와주신 고마운 분입니다. 이런 변화가 책을 읽을 한국 독자와 우리 두 사람의 인생에 어떤 변수가 될지 기대가 되지 않습니까.”
이 난센스 같은 대화에 현장 사람들은 귀를 기울인 모습이었다. 문학적인 토론이라는 것이 모호하면 할수록 시적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대로 좋은 서막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우선 표지 문구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나는 저급한 역설적인 표지 문구로 먼저 그를 건드리고 싶었다. 프랑스 작가는 예상했다는 듯이 간단하게 대응했다. 표지 문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른 대응 문구를 같이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설 p.202에 대응 문구가 있다고 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된 것은 /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한 것이다
그가 말한 문장을 듣자마자 숨이 거칠게 올라왔다. 우선 그 문장을 읽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표지 문구의 대응 문장이라면 당연히 기억해야 한다. 기억하지 못해도 들으면 기억나야 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제대로 독서했다면 당연히 그래야 했다. 코로나 백신의 부작용으로 기억력이 약해졌거나, 세계적인 작가의 언어 감각 앞에서 오래간만에 사용하는 프랑스어가 삐걱거려 내심 당황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주르륵 빠르게 읽어 치운 허술한 독서의 구멍이 가장 큰 원인이었을 것이다. 프랑스 작가는 여유로운 태도로 말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들은 제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제가 고백하지 않아도 아시겠지만, 세상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에서 인용한 것이니까요.”
작가가 말하는 문구가 기억나지 않는데, 문구의 출처를 아는 것은 가능치 않은 일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이라는데 그가 책의 제목까지 알려주면서 나의 자존심을 뭉개지 않도록, 나는 서둘러 아는 척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말한 두 번째 문장이 표지 문구와 정반대의 뜻을 담고 있음을 깨달았다.
‘오만하구나.’
속으로 그런 생각이 올라오자 차츰 정신이 돌아왔다. 표지 문구에서도 반어적인 표현으로 독자를 우롱하더니, 그 문장과 전혀 반대되는 문장으로 다시 독자를 우롱하려고 했다. 지혜로운 대담자라면 작가의 오만쯤은 쉽게 누그러뜨릴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웃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당신의 논리대로라면,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아야 하며 동시에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는군요.”
그는 은인에게 하듯 친절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사람들의 종이 되지 않아야 모든 이의 종이 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의 비밀이 제가 책에 담고 싶었던 것입니다.”
인용한 책을 모르고 대담을 계속 이어가다가는 실수를 저지르겠다는 우려가 설핏 머릿속을 스쳤다.
“저는 알고 있지만, 혹여 모르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 책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그런데 그때, 프랑스 작가는 천사를 보았거나 악마를 보았거나 무엇인가 본 모양이었다. 작가의 얼굴에서 난감함과 호기심이 섞인 표정이 대서양을 건너 나에게로 전달되었다. 나는 그때 약 때문인지 텔레파시 주파수가 매우 높게 올라가 있어서 그의 내면에서 느끼는 감정이 그대로 전달되곤 했다.
한국의 영상 기술자가 나를 흘끗 쳐다보았고, 김아리랑 씨 대신에 온 국제예술창작재단의 노랑머리 직원이 급하게 종이에 무엇인가를 써서 허공에 들고 내 쪽을 향하여 흔들었다. 두 사람의 거리 때문인지 열 때문인지 그 글자가 선명하게 들어오지 않았다. 한숨 같은 탄성이 전해졌다. 그 책이 무엇인지, 나만 빼고 모두가 알고 있는 느낌이었다.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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