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경제 둔화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으로 보이는 현상이 잇달아 나타나고 있다. 버버리 등 명품 브랜드가 재고 처리를 위해 반값 세일을 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데 이어 이번에는 수도 베이징의 사무실 임대료가 30% 급락했고 공실률은 18%에 달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최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 부동산 시장 관계자들을 인용, 베이징 중심 상업지구에서 국영 기업들과 빅테크(거대 정보기술기업)들이 떠나면서 사무실 임대료가 전년보다 30% 정도 급락했다.
또 중국 부동산 조사업체 CRIC의 이달 보고서를 인용해 2분기 베이징 전체 사무실 공실률은 1선도시(베이징·상하이·광저우·선전) 중 최고인 약 18%에 달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2분기 베이징의 하루 사무실 임대료는 전 분기보다 3.7% 떨어진 ㎡당 9.23위안(약 1천760원)이라고 덧붙였다.
SCMP는 특히 국내외 주요 기업 여러 곳이 둥지를 튼 베이징 북동부 차오양구의 왕징 및 주셴차오 구역의 2분기 공실률이 전 분기보다 2.2%포인트 뛴 24.5%로 베이징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고 전했다.
이어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가 베이징 본부를 왕징에서 이전하면서 15만㎡ 이상의 사무실 공간이 비게 됐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업계 자료를 인용해 왕징에 있는 62층짜리 삼성타워가 공실률이 거의 20%에 달하며 하루 임대료를 ㎡당 7.4위안(약 1천410원)으로 낮췄다고 전했다. 이는 해당 지역 ㎡당 하루 평균 임대료 9.1위안(약 1천730원)보다 18.7% 낮은 가격이다.
SCMP는 삼성전자의 중국 본부가 자리한 삼성타워가 비어있는 8천600㎡ 공간에 임차인을 들이고자 무료 임대 기간 9개월을 제공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심 상업지구의 다른 건물들이 무료 임대 기간을 3∼4개월 제공하는 것보다 훨씬 길다.
베이징의 부동산 중개업자 마샤오위는 SCMP에 "경제가 안 좋고 외국 기업들은 떠나고 있으며,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면서 베이징 중심 상업지구 임대료가 1년 전보다 20∼30% 하락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건물주들은 임차인을 유지하고 늘어나는 공실을 메우고자 현재 상당히 할인된 임대료와 관대한 무료 임대 기간을 제공하고 있다"며 "부동산 개발업체들은 공시 임대료가 지나치게 낮은 것을 원하지 않기에 몇 달간 임대료를 면제해주는 방식으로 임차인의 부담을 효과적으로 덜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제 둔화 외에도 중국 당국의 슝안신구 육성 프로젝트도 베이징 중심 상권의 공실률을 높이는 요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시진핑 신도시'라 불리는 허베이성 슝안신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7년부터 '중국의 천년대계'로 추진하는 대표적인 치적 사업이다.
중국은 수도 베이징의 기능 분산을 위해 베이징 남서쪽 100㎞ 지역에 400조원이 넘는 돈을 투자해 슝안신구를 조성하고 국가급 특구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밀어붙이고 있다.
중국 기업 정보 사이트 치차차에 따르면 올해 3월 현재 중국중화집단공사(시노켐), 화능그룹 등 4곳이 베이징에서 이사를 나가 슝안신구에 본부를 등록했다.
이하우스 중국 연구개발연구소의 옌웨진 소장은 SCMP에 "베이징은 전통적으로 정부 업무의 허브이자 대부분 국영기업의 본부가 위치한 곳이지만 이제 변하기 시작했다"며 "그렇기에 베이징의 부동산 시장은 경제적 관점뿐만 아니라 정책과 정치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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