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상업용 부동산 소유주들이 대출 원금과 이자를 제때 갚지 못하면서 부동산 압류가 증가하고 있다. 상황을 지켜보던 대출 기관들이 시장 회복이 어렵다고 보고 부실 산업용 부동산 담보에 대한 압류 조치에 나서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9일(현지 시간)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을 인용해 4~6월 미국에서 압류된 사무용 건물과 아파트, 기타 상업용 부동산의 규모가 205억 5000만 달러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전 분기의 182억 3400만 달러보다 13% 늘어난 금액이자 2015년 3분기(275억 달러) 이후 약 9년 만에 가장 큰 규모다.
오피스 빌딩이 전체 부동산 압류 증가분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MSCI에 따르면 부동산 압류 규모는 지난해 2분기부터 1년간 64억 8000만 달러 증가했으며 이 가운데 50억 달러가 사무실 빌딩 압류 증가분이다.
현재 미국 오피스 빌딩은 팬데믹 이후 확산된 재택근무의 여파로 공실률 급증에 시달리고 있다. 반면 기준금리 인상 이후 이자 부담은 커지면서 건물주들의 대출 연체는 늘고 있다. 데이터 제공 업체 트렙에 따르면 상업용 부동산 대출을 기초자산으로 해 발행한 상업용부동산저당증권(CMBS)의 연체율은 이달 8.11%로 2013년 11월(8.58%) 이후 약 1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WSJ는 “향후 미국 경제가 둔화하고 기업들이 직원을 줄여 사무실 수요가 줄어든다면 상업용 부동산 가치는 더욱 하락할 수 있다”면서 “노후 사무실 건물은 설령 금리가 낮아진다 하더라도 이전 가치를 회복할 수 없다는 견해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도 이달 9일 상원에 출석한 자리에서 “상업용 부동산의 위험은 아마도 수년 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압류가 늘면서 부동산 가격을 낮춘 급매 역시 증가하는 추세다. WSJ는 최근 워싱턴DC 내 백악관 근처의 한 사무실 건물이 압류 매각 절차를 통해 1760만 달러에 팔린 사례를 소개했다. 기존 건물주가 2010년도에 지불했던 가격보다 70% 이상 떨어진 금액이다.
압류 증가는 외려 상업용 부동산 경기가 바닥에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방증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근 워싱턴DC 건물 2채를 헐값에 매입한 부동산 개발 업자 맷 페스트롱크는 “대출 기관들은 이제 담보물 가격에 좀 더 냉정해지고 있다”며 “시장 사이클이 새로운 국면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