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초 후 진입합니다.” 휴대폰 메시지가 바쁘게 오가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한 주택가. 한 무리가 숨을 죽이고 문 앞에서 대기 중이다. 같은 시간, 수천 ㎞ 떨어진 한국의 한 아파트 단지. 또 다른 무리가 긴장된 얼굴로 현관문 앞에서 메시지를 받는다. 약속한 시간에 두 팀은 동시에 문을 열고 들어가 피의자를 검거하고 장비와 증거물을 압수한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이 상황은 2023년 10월 인도네시아 저작권 침해 국제사범 검거 현장이다. 이들은 2015년부터 10만개 이상의 영상 파일을 한국 교민 대상으로 유료로 불법 송출해 160억 원 이상의 피해를 발생시켰다. 검거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저작권 범죄 과학수사대를 주축으로 한국저작권보호원, 부산경찰청, 인터폴 그리고 인도네시아 지식재산청이 합동으로 참여했다.
2008년 중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저작권 침해범죄에 대한 사법경찰권이 없어 행정단속의 한계가 있었다. 이에 당시 유인촌 문화체육부장관 주도로 저작권 특별사법경찰이 발족됐다. ‘저작권 감시대상국’에서 ‘저작권 보호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출발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로부터 15년 후 같은 장관의 지휘 아래 인터폴과 협업해 국제수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점에서 이 작전은 우리나라의 저작권 침해 수사 범위와 역량이 국제적으로 확장되었음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성과였다. 이 과정에서 한국저작권보호원은 저작권·디지털 포렌식 기술을 활용해 콘텐츠 불법 유통 증거물을 식별하고 범죄사실을 입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디지털 시대에 저작권 보호는 국경을 초월한 이슈다. A국적의 운영자가 B국가에 서버를 두고, C국가의 콘텐츠를 D국가의 언어로 불법 유통하는 식으로 침해가 발생한다. 각국의 저작권법과 문화도 서로 다르다. 따라서 침해 대응은 국제사회가 저작권 보호라는 공통의 가치에 합의하는데서 시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 간 공조가 필수다.
한국저작권보호원은 국제공조 강화를 위해 올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2024 저작권보호 국제공조회의’를 개최했다. 세계지식재산기구(WIPO), 미국영화협회(MPA) 등 주요 기관과도 협력하고 있다. K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높은 동남아시아 국가 대상으로는 선진 저작권 보호 기술과 제도 전수를 통해 협력 관계를 공고히 하고 있다.
저작권 보호를 위한 국제공조는 창작자와 이용자 모두에게 안전하고 공정한 환경을 제공하는데 필수다. 한국저작권보호원은 우리 콘텐츠에 대한 모니터링과 불법 게시물 삭제 노력에 전력을 기울일 뿐 아니라, 공조 수사의 범위를 넓혀 협력 체계를 더욱 견고히 할 것이다. 콘텐츠 확산에 경계가 없듯, 저작권 보호에도 국경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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