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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논단]내려야 할 때 못 내리는 금리

구정모 대만 CTBC비즈니스스쿨 석좌교수

고금리에도 수도권 집값 오르고

환율 고공행진·물가 상승 이어져

'25만원법' 등 정치권 선심성 남발

적절한 정책운용 가로막는 역효과





올해 7월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두고 채권시장은 한국은행이 빠른 금리 인하 시그널을 줄 것이라는 기대에 휩싸였다. 이미 금통위를 맞기 이전에 선진국 중 스위스·스웨덴을 비롯해 유럽중앙은행(ECB)이 기준금리를 내렸고 영국도 이달 들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4년 만에 인하했다. 금리 인하 여건이 조성됐다는 대통령실의 발언과 여당의 금리 인하 요구까지 겹치면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여기에 더해 한국과 미국의 물가 지표가 둔화하는 것이 확인되면서 채권시장은 8월쯤이면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결과적으로 김칫국 마시기와 다름없었다. 1400원에 근접한 원·달러 환율, 재차 상승하는 부동산 가격과 상반기 들어 25조 원 넘게 증가한 가계부채는 도저히 금리 인하를 할 여건이 아니라는 것이 금통위의 판단이었다. 단 한 명의 ‘금리 인하’ 소수 의견조차 나오지 않은, 시장 컨센서스에 벗어난 ‘매파적’ 금통위였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발표에 따르면 고금리 기조의 지속으로 기업 투자와 가계 소비가 위축되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 호황에 가려졌을 뿐 경제주체들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주요 선진국들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피벗(통화정책 방향 전환) 이전에 금리를 인하할 수 있었던 반면 우리나라는 그러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금통위 의사록과 한은 총재의 기자 간담회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수도권 집값 상승과 고환율이다. 즉 최근의 경기와 물가 동향을 보면 금리 인하 필요조건이 충족됐지만 집값과 환율이 발목을 잡고 있다. 금리를 내려야 할 때 내리지 못하고 있다.



겨우 진정되기 시작했던 부동산 시장은 잊을 만하면 나오는 부동산 부양책 및 대출 규제 완화로 집값 상승에 다시 불을 붙이고 있다. 고금리 여파에도 내 집 마련, 갈아타기 심리가 더 강한 것이다. 부동산 불패 신화를 믿는 경제주체들은 고금리 기조에도 재차 대출 창구 문을 두드리고 있다. 올해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는 7.4% 평가절하돼 1380원 전후로 움직이고 있다. 같은 기간 주요국 통화나 신흥국 통화에 비해 크게 절하됐다. 즉 외국인 투자 자금의 지속적인 유입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고환율은 한국과 미국 간 기준금리 격차가 벌어진 게 주된 요인이다. 금리 격차는 지난해 초부터 벌어지기 시작해 2%포인트나 되는 금리 역전 현상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이는 통화 당국이 내수 위축을 우려해 금리 인상 대신 외환 보유액을 소진하면서 환율 방어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1년 반 동안 내수는 회복되지 않고 고환율로 인한 물가 상승과 투자 자금 이탈은 금리 인하의 발목을 잡고 있다. 즉 환율의 고공 행진이 지속되는 가운데 힘겨운 환율 방어를 통해 1400원을 넘기지 않도록 무진 애를 쓰고 있다. 이 또한 미 연준의 금리 인상에 맞춰 적절히 금리를 올려야 할 때 올리지 못해 빚어진 현상이다.

이와 같이 올려야 할 때 못 올리고 내려야 할 때 못 내리는 금리로 인해 우리 경제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사실 금리 역전 현상의 장기화에 따른 폐해, 탄력적이지 못한 통화정책 운용, 부동산 시장의 불안을 가중시킨 발언 등 통화 당국의 책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연준의 피벗이 확실한 지금 오히려 시장의 기대를 벗어나는 매파적 돌발 발언으로 당국의 신뢰성만 저해했다. 가계부채의 해결 없이 8월이나 10월 연준을 따라 비둘기파적 입장으로 전환한다면 주체성 없는 정책 운용에 대한 비판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와 정치권에 있다.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며 제시한 비상 대책이 집값 상승을 부추기고 가계부채를 늘리는 꼴이 되고 말았다. 또 총선 직후 야당의 종합부동산세 완화 발언 역시 시장의 심리를 집값 상승으로 이어지게 했고 최근의 ‘25만 원 지원법’은 재정 건전성 훼손과 물가 상승 우려를 낳고 있다. 즉 정부 정책의 엇박자와 정치권의 선심성 정책 남발은 기준금리를 내려야 할 때 적절한 정책 집행을 어렵게 하는 역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경제와 국민에게 돌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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