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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김다은의 웹소설] <3회>

연합뉴스




3. 나무관 속의 아기

“분명 관속의 아기가 운 거지?”

“살아 있나?”

낡은 나무관 옆에 서 있던 두 명의 악당은 동시에 말을 뱉었다. 우두머리 단테는 홉이 달아나면서 던진 돈을 줍느라고 조금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관 속의 가냘픈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다. 단테는 주운 돈을 주머니에 쑤셔 넣은 후 관을 깊숙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두 놈을 발견했다.

‘죽은 여자에게 반한 것이야. 쓸모없는 놈들!’

단테는 성실한 홉이 가버리고 무능한 두 놈이 남은 것이 속상했다. 같이 동거하던 여자가 임신한 후 홉은 일행에 합류했다. 홉은 아기가 생기자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성실하게 마약 제조일에 동참했다. 그런데 관속에 들어 있는 모자(母子)를 보고 달아나버렸다. 자신의 아기를 먹여 키우기 위해 벌어야만 하는 돈도 던지고 가버렸다. 충격을 받은 것은 이해하지만, 그런 결정을 단숨에 하게 만든 홉의 내면의 무엇이 궁금했다.

다가갈 때까지, 멍청한 두 놈은 여전히 나무관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단테는 큰소리로 야단을 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두 놈은 여자가 아니라 황토로 빚은 듯한 물컹한 아기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기의 감은 두 눈의 단아함과 또렷한 입술의 윤곽이 신비하여 멈칫했다. 키가 큰 로깡이 단테에게 작게 속삭였다.

“아기가 살아 있어요.”

“지금이 농담할 때야? 아기를 핑계 삼아 홉처럼 일하기가 싫은 거지. 여자와 아기, 두 사람의 뼈를 수거하니 돈을 더 달라는 거야?”

그 순간이었다. 단테는 관 속 아기가 한쪽 실눈을 가늘게 떠는 것을 보았다. 얇은 눈꺼풀이 세상의 무게를 견디며 미미하게 열리는 믿기 어려운 순간과 맞닥뜨렸다. 몇 밀리미터 열린 실눈이 온몸의 에너지로 단테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두 놈은 실눈의 변화를 보지 못한 듯했다.

“단테 씨! 우리가 아기 울음소리를 들었어요.” 아기는 나머지 한 눈을 뜰 여력은 없어 보였다. 단테는 시계를 보았다. 허락된 시간이 많지 않았다. 나무관에 못을 치기 전 죽은 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30분이었다. 세상의 미련이나 고통을 놓고 정리하라는 ‘죽은 자를 위한 예의의 시간’이었다. 세상과의 인연을 못질로 단단히 닫아버리기 전에 베푸는 마지막 시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에는 아무도 침범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상례(喪禮)였다. 단테는 그 예의의 시간을 예외로 샀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일을 치를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시간이었다. 서로 정체를 들키지 않도록 사람들과 맞닥뜨리거나 얼굴을 보면 안 되는 계약이었다. 아기의 열린 실눈과 단테의 시선이 다시 조우했다.

“빨리 뼈들을 뜯어서 담아!”

“누구의 뼈를요?”

이 질문에 단테는 잠시 망설였다.

“죽은 여자의 뼈! 여자의 뼈를 샀으니 여자 것만 가져가자.”

두 놈은 동시에 단테를 바라보았다.

“아기는요?” “ …… .”

“살아 있는 아기는요?”

“살아 있을 리 없어. 죽은 직후에 사후 경직 현상 때문에 … 꿈틀거릴 수 있어.”

아기가 여전히 단테의 시선을 붙잡고 있어서 더듬거렸다. 두 놈은 자꾸 엉뚱한 소리로 버텼다.



“울음소리를 분명히 들었어요.”

평소 미련하기도 하고 소심해서 자신의 의견이 별로 없는 앤드류까지 나섰다. 단테는 시계를 보고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손톱자국처럼 열린 실눈이 온 생명을 다해 단테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관속에서 생명이 태어날 수는 없었다. 죽은 여자의 몸속에서, 죽음 속에서 생명이 뚫고 나올 수 없었다.

“아니라니까!”

단테가 워낙 강하게 말하자 그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뚱뚱이 앤드류는 가만히 있었지만, 로깡은 포기한 기색 없이 관 안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아기의 울음을 토해내게 하려는 듯 작은 입술을 손가락으로 건드려보기까지 했다.

“이번에 인골을 가져가지 못하면 다음 달 제공할 마약 ‘모르’의 제조 자체가 불가능해. 굶어 죽고 싶지 않으면 빨리 하나라도 건져.”

인골 없이 마약을 제조할 수는 있어도 가짜 약이었다. 인골을 빼고 제조한 ‘모르’는 효능이 거의 없었다. 인골 자체에 어떤 효과가 있다기보다 촉진제 역할을 하는 모양이었다. 다른 마약보다 효능이 높은 ‘모르’는 부르는 것이 값이었다. ‘모르’는 고급 손님을 상대로 한 마약이었다. 가짜 마약으로 신용을 지킬 수는 없었다. 단테는 마음이 급했다.

“5분 안에 빨리 나가야만 해. 지금 나가지 않으면 우리 모습을 들키고 말 거야. 장례사가 들이닥치면 끝장이야.”

순간, 로깡인지 앤드류인지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했다.

“단테 씨! 아이를 관 안에 넣은 채 못질을 하게 내버려 둘 거예요?”

“그럼 어쩌라는 거야?”

망치를 든 사람들이 곧 들이닥칠 것이다. 나무관을 못질하여 봉해버릴 죽음의 봉사자들이 올 것이다. 최근 마약에 절은 시신이 많아서 동물들의 파묘가 심해졌다. 그들은 과거보다 더 완벽하게 못질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아기의 한쪽 실눈이 견디지 못해 스르르 닫히는 순간이었다. 단테는 작은 비명을 질렀다.

“아, 안 돼! 죽은 여자는 두고 … 아기를 데려가자, 빨리!”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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