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 매직’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절기상 여름의 끝과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처서가 지나고 나면 아무리 덥다가도 ‘마법처럼’ 시원해진다는 뜻이다. 과거에는 통상 ‘입추’부터 더위가 한풀 꺾일 것을 기대했지만 몇 년 사이 여름이 끝나는 시점이 점점 뒤로 밀리며 입추 대신 처서에 희망을 걸기 시작한 셈이다. 8월에 접어들자 주변에서도 “언제쯤 ‘처서 매직’이 오겠냐”며 불볕더위가 끝나기를 바라는 염원의 말이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다.
다만 한편으로는 언제까지 ‘처서 매직’이 유효할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설령 가을이 찾아온들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면 부질없는 노릇이다. 최근 기후변화에 따라 사계절 구분이 무색할 만큼 봄가을의 존재감은 흐릿해지고 무더위와 한파는 몸집을 키우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봄철(3~5월) 전국의 평균기온은 역대 두 번째로 높았다. 특히 4월에는 서울을 비롯해 곳곳에서 최고기온이 30도 가까이 치솟으며 사실상 ‘초여름 날씨’가 나타나기도 했다.
그 뒤를 이은 여름도 끝날 기미 없이 모두를 지치게 하고 있다. 전국에 폭염특보가 내려진 것은 물론 곳곳에서 열대야가 열흘 넘게 이어지는 등 밤낮 가리지 않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며 온열 질환자 역시 급격히 증가했다. 질병관리청 산하 온열질환감시체계에 따르면 현재까지 추정 사망자 17명을 포함해 1810명의 온열 질환자가 발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00명 가까이 늘어난 것은 물론 사망자 수로는 최근 10년래 세 번째로 많은 수준이다.
우려되는 점은 이렇게 ‘살인적으로 더운’ 여름이 점점 빨리 찾아오고, 더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더 이상의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폭염 대응 체계가 구색만 갖춘 수준을 넘어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엄격하게 감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치는 노인정에 ‘무더위쉼터’ 문패를 붙이거나 법적 구속력이 없는 ‘온열 질환 예방 가이드’를 배포하는 것만으로는 폭염 취약 계층을 지킬 수 없다. 이상기후가 일상화하는 가운데 소외되는 연령층이, 혹사당하는 직업군이 없도록 탄탄한 안전 대책이 마련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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