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일이다. 그룹에서 주관하는 ‘최고경영자(CEO) 아카데미’ 참석 e메일을 받았다. 그룹 내 여러 CEO가 모여 외부 강사의 강의를 듣고 자유롭게 토론하는 자리로 강의 수준이 높고 참석 CEO 간에 편안하게 의견을 나눌 수 있어 무척 기다려지는 행사다. 당시 주제가 ‘로마에서 얻는 조직 흥망의 열쇠’였는데 나름 열심히 준비하려고 집 여기저기 책장을 뒤져 로마와 관련된 책을 찾았다. 일본 유명 작가인 시오노 나나미가 지은 ‘로마인 이야기’와 ‘콘스탄티노플 함락’이라는 책이었다.
콘스탄티노플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성벽도 두꺼워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안전했던 천혜의 요새다. 하지만 1202년 시작된 4차 십자군 원정으로 성이 함락됐다. 치열한 공격 끝에 성에 뚫린 작은 구멍이 원인이었다. 한 사람이 겨우 기어들어갈 작은 구멍이었는데 알림이라는 이름의 인물이 혼자 목숨을 건 돌격을 했고 깜짝 놀란 성안의 수비대가 도망치면서 성이 함락된다. 철옹성이 작은 구멍 하나 때문에 허무하게 무너진 것이다.
주변을 살펴보면 위기는 가장 약한 연결 고리나 작은 구멍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독일 화학자 유스투스 리비히 남작은 식물의 건강한 성장은 질소 같은 필수영양소의 채움이 아니라 가장 부족(결핍)한 영양소에 의해 결정된다는 ‘미니멈의 법칙’을 발표한 바 있다. 한창 뜨거운 파리 올림픽 복싱 경기에서 복서들이 호시탐탐 상대방의 가장 약한 부분에 한 방을 먹이려고 노리는 이유가 이해된다.
개인과 조직도 마찬가지다. 작은 소홀함이나 부주의가 위기를 부른다. 작은 구멍을 방치해 몰락하는 것은 수백 년 전통의 기업이나 국민 기업에도 예외가 없다. 232년 역사의 베어링스은행은 어느 한 신입 직원이 파생상품 투자를 잘못한 실수를 덮고 은폐하다가 ING그룹에 단돈 1파운드에 매각돼 충격을 줬고 오랫동안 일본 유제품 시장의 국민 기업으로 불린 유키지루시유업은 우유 저장탱크 청소를 소홀히 한 작은 부주의로 역사에 남을 대규모 식중독 사건을 일으켜 대국민 사과와 함께 폐업했다. 작은 구멍을 방치하거나 소홀히 해서 맞게 되는 추락은 정말 순식간이고, 아찔하다.
그래서 필자가 다니는 그룹에서 최우선으로 강조되는 가치가 견고한 내부통제와 고객 신뢰다. 그룹 내에서는 ‘스캔들 제로’라고 정의하는데 잠깐의 실수나 작은 방심으로 어렵게 축적한 시장과 고객의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짐을 경계하는 가치다. 한 번 무너진 구멍은 회복하는 데 곱절의 에너지와 희생이 필요할 뿐 아니라 작다고 무시하다가 결국 큰 것을 잃게 된다. 사업 전반에 작지만 약한 연결 고리나 구멍은 없는지 다시 꼼꼼하게 살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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