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공을 완료했는데 분양률이 30% 수준에도 못 미치자 시행사가 고의적으로 책임준공 이행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성실히 공사했는데도 빚을 떠안아야 한다면 대체 누가 건물을 짓겠습니까.”
최근 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간담회에 참석한 A 시공사 대표의 말이다. 총 26개월간의 공사를 마치고 오피스텔 준공을 완료했지만, 분양률 저조로 PF 대출 상환이 어려워지자 시행사가 고의적으로 책임준공 이행을 방해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준공 완료에도 불구하고 시행사와 설계사, 감리단이 비협조적으로 나올 경우 사용승인이 불가능하다. 책임준공을 이행하지 못한 시공사는 PF 대출 채무를 대신 떠안아야 한다. 영세한 시공사들은 빚을 떠안다 결국 파산에 이른다.
억울해도 기댈 곳이 없다. 책임준공의무는 천재지변, 내란, 전쟁 등 불가항력적인 사유가 발생한 경우를 제외하고 어떤 경우에도 지켜야 한다. 돈을 빌려주는 은행 등 대주단으로서는 시행사의 의무 불이행 및 부도, 공사비 미지급, 인허가 마비, 공사 민원 등 이슈가 발생하더라도 자금을 회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공사기간 연장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치솟은 자잿값도, 운송노조 파업으로 인한 자재 운반 차질도 책임준공의무를 벗어나기 위한 이유로 인정받지 못했다.
책임준공의무 리스크는 공급 위축으로 이어졌다. 지난 6월 서울 비(非)아파트 착공은 전년 동월 대비 약 48% 감소했다. 대형 건설사가 주로 맡는 아파트는 상황이 좀 낫지만, 오피스텔과 연립·다세대(빌라) 등은 건설사의 수주 기피 현상이 수요 감소와 맞물려 씨가 말랐다. 건설공제조합이 영세 건설사를 위해 내놓은 책임준공의무 보증 상품은 올해 들어 벌써 30건 이상의 신청이 접수됐다.
공급 확대 여건을 갖춰도 건물을 지을 건설사가 없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국토교통부가 이날 발표한 ‘8·8 부동산 대책’에 공급 확대를 위한 건설사 유인책이 담겨있지 않은 게 아쉽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진정한 국민 주거 안정을 위해 공급 확대 방안과 더불어 건설사 영업환경 개선책도 함께 논의돼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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