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 깨기’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금메달이었다. 유명한 도장을 찾아다니지만 않았을 뿐 세계 유명 도장에서 다 모인 셈인 톱 랭커들을 차례로 깨부수고 정상에 섰다. 김유진(24·울산시체육회)은 키가 183㎝나 되는데 57㎏을 맞추려 혹독한 감량을 해야 했고 올림픽 랭킹 안에 들지 못해 선발전에 또 선발전을 거쳐야 했던 선수다.
9일(한국 시간) 프랑스 파리의 그랑 팔레에서 열린 파리 올림픽 태권도 여자 57㎏급 결승전에서 김유진은 세계 랭킹 2위 나히드 키야니찬데(이란)를 라운드 점수 2대0(5대1 9대0)으로 제압했다. 16강전에서 세계 5위, 8강전에서 세계 4위를 잡은 뒤 준결승전에서 세계 1위 뤄쭝스(중국)마저 2대1로 넘은 김유진이다.
결승 1라운드에서 상대 공격을 봉쇄하며 4점 차로 이긴 김유진은 2라운드 시작 34초 만에 머리 공격을 성공했다. 긴 다리로 차곡차곡 점수를 쌓았고 다급해진 상대 감점까지 더해 낙승을 완성했다.
세계 1·2·4·5위를 이긴 김유진은 세계 24위 선수다. 올림픽 랭킹 5위 안에 들지 못해 대륙별 선발전을 치러야 했고 이 선발전에 나가기 위한 내부 선발전도 있었다. 대륙별 선발전에 어느 체급의 누구를 내보낼지 대한태권도협회는 표결까지 했다고 한다. 그렇게 어렵게 생애 첫 올림픽 출전 기회를 얻은 김유진은 본무대에서는 그리 어렵지 않게 금메달까지 갔다. 이 체급 금메달은 2008년 베이징 대회 임수정 이후 16년 만이다. 김유진의 우승으로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은 2008 베이징, 2012 런던과 같은 단일 올림픽 최다 금메달(13개) 타이기록을 썼다.
김유진은 키가 183㎝다. 체급에 체중을 맞추고 기량도 갖추기 위해 하루 발차기만 최대 3만 번씩 했다고 한다. 2시간의 훈련 동안 보통 1만 번 발차기를 하는데 많을 때는 하루 세 차례 훈련을 견뎌냈다. 식단도 엄격하게 조절한 김유진은 금메달 뒤 삼겹살과 된장찌개·맥주부터 떠올렸다.
김유진은 “정말 매일 지옥길로 가는 기분이 들 만큼 자신을 혹독하게 몰아붙였다”며 “‘그 훈련을 다 이겨냈는데 여기서 무너지면 안 되겠다. 꼭 이겨야겠다’ 하면서 더 악착같이 발차기했다”고 세계 1위와의 4강전을 복기했다. 훈련 과정을 떠올리면서 ‘내가 이까짓 거 못 하겠어?’라는 정신으로 4경기를 이겼다고 한다. 24위 선수가 톱5 선수들을 잇따라 무너뜨린 데 대해서는 이렇게 얘기했다. “랭킹은 숫자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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