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를 충격에 빠트렸던 미 뉴욕 9·11 테러에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개입했다는 정황이 23년 만에 포착됐다.
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9·11 테러 희생자 유족의 소송 과정에서 이 같은 정황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최근 처음으로 공개됐다. 유족 측은 그동안 미국 법무부에 관련 자료 제공을 요구해왔다.
비행기 스케치 속 방정식의 정체
이번에 공개된 증거들은 2001년 테러 당시 비행기 납치범과 관련이 있는 사우디 국적자의 집에서 영국 당국이 압수한 영상과 비행기 스케치 등이다.
9.11 테러 열흘 후 영국 경찰은 알-바유미로 알려진 사우디 국적자의 집을 급습해 비행기 스케치를 압수했다. 해당 압수물에는 수학 방정식도 함께 적혀 있었다.
알-바유미는 2000년 초 9·11 테러범 가운데 2명을 로스앤젤레스에서 만나 이들이 아파트를 임차하고 현지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운 인물이다. 알-바유미는 사우디 항공사에서 회계사로 일해왔다고 주장했다. 당시 알-바유미는 테러범과의 만남이 우연이었다고 주장했지만 FBI는 주선된 만남일 수 있음을 시사하는 증거를 찾아냈다.
사우디 정부는 알-바유미가 정부 요원이라는 주장을 부인했다.
하지만 2017년에 기밀 해제된 연방수사국(FBI) 문서에 따르면 알-바유미는 사우디 정보국의 비공식 요원이었다. FBI는 전문가에게 스케치 속 방정식 분석을 의뢰했고 전문가는 10년 만에 이 방정식이 지상의 목표물을 타격하기 위한 비행기 하강 속도 계산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영국 정보 당국은 알-바유미 관련 자료를 FBI에 넘겨 수사를 지원했다. 그러나 비행기 스케치가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들이 사우디 정부의 테러 개입 가능성을 증명하지는 못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정황적 증거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고 NYT는 설명했다.
이에 맞서 사우디 정부 변호인은 지난 1일 법정에서 이 같은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유가족 소송에서 사우디가 배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9·11 테러 조사위원회 “스케치 존재 몰랐다”
9·11 테러 조사위원회는 해당 스케치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필립 젤리코프 9·11 위원회 집행 이사는 "만약 알았다면 우리는 알-바유미에게 이에 관해 물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주 맨해튼 연방법원에서 열린 심리에서 원고 측 변호인은 알-바유미가 2021년에 이 스케치가 자신의 것이라는 증언을 했다고 폭로했다. 변호인은 이 스케치가 알-바유미 아들의 숙제 중 일부일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판사는 이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NYT는 전했다.
알-바유미, 미 의사당 영상 촬영도
또 하나의 정황 증거로 영국 버밍엄에 있는 알-바유미의 이전 집에서 발견된 미 의사당 영상이 지목됐다.
1999년에 촬영한 이 영상에는 9·11 테러범이 표적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있는 의사당의 입구, 출구, 주차 시설, 경비원 등의 모습이 담겼다. 알-바유미는 영상에서 의사당을 '가장 중요한 건물'로 내셔널 몰에 있는 사람들을 '백악관의 악마들'로 칭했다. 또 영상 속에서 '계획'을 언급하기도 했다.
9·11 테러 피해자 가족은 2002년부터 사우디 정부가 테러에 관여했음을 보여주는 자료를 공개하라고 요구해왔다. 또한 미국 정부에 기밀 정보 공개를 요구하는 소송도 벌였다. 이들은 소송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사우디 정부 요원이 납치범을 도왔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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