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현지 시간) 1만 2000명의 디즈니 팬이 운집한 미국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컨벤션센터에서는 ‘평범한 복장’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형형색색 드레스와 왕관을 쓴 여성에게 이름을 묻자 “신데렐라”라는 답이 돌아왔고 바로 옆에서는 스타워즈의 현상금 사냥꾼 ‘만달로어’와 악당 ‘스톰트루퍼’가 포즈를 취하며 겨루고 있었다. 디즈니랜드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디즈니 ‘캐스트(배우)’가 아니라는 점이 다르다. 디즈니 공식 팬클럽 D23의 격년제 팬 감사제 ‘얼티머트 팬 이벤트’의 참석자들이 저마다 좋아하는 캐릭터 복장을 하고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디즈니 굿즈 판매대는 끝없는 대기줄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델라웨어에서 왔다는 70대 노인은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어린아이처럼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나는 디즈니 ‘평생 팬(lifetime fan)’이고 내 아들도, 손자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1955년 7월 세계 최초의 테마파크이자 첫 디즈니랜드가 만들어진 애너하임에서 9일부터 11일까지 사흘간 열리는 D23은 격년으로 찾아오는 ‘디즈니 팬’들의 축제다. D23는 ‘엔터테인먼트 회사 팬클럽’을 표방하며 2009년 시작됐다. 이름은 디즈니가 설립된 1923년에서 따왔다. D23 골드 멤버십은 가입비가 연간 99.99달러부터 시작한다. 여기에 79~2599달러에 이르는 추가 비용을 내야 격년제 행사에 참여할 수 있지만 팬들은 기꺼이 지갑을 연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쌓아오며 ‘모두에게 사랑받는 콘텐츠 기업’이 된 디즈니이기에 가능하다.
이날 저녁 신작 콘텐츠를 소개하는 ‘엔터테인먼트 쇼케이스’가 개최된 혼다센터에는 1만 2000여 명의 팬들이 운집해 콘서트장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밥 아이거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마블·픽사 등 각 스튜디오 수장들이 무대에 오를 때마다 팬들은 환호성을 쏟아냈다. 첫날 쇼케이스는 올해 추수감사절에 공개될 ‘모아나2’의 수록곡을 라이브로 최초 공개하는 무대로 시작했다. 모아나에서 ‘마우이’의 목소리 연기를 맡은 유명 배우 드웨인 존슨이 나타나 무대에서 춤을 추며 분위기를 한껏 달궜다. 할리우드 명장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제작 중인 ‘아바타3’의 제목이 ‘불과 재’임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아이거 CEO는 “디즈니가 가장 사랑하는 일은 여러분의 마음을 기쁨과 경이로움으로 채우는 것”이라며 “한 세기 동안 팬과 깊은 유대감을 형성한 디즈니 외에는 누구도 D23와 같은 주말을 만들어낼 수 없다”고 강조했다.
탄탄한 팬층을 토대로 영상·음악·게임 등 무형의 콘텐츠를 뮤지컬·제품·어트랙션·리조트·크루즈 등 ‘현실’로 이어내는 사업 전략은 창업자 월트 디즈니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이 전략을 ‘플라이휠(flywheel)’이라 칭했다. 기술과 콘텐츠가 융합된 현재 플라이휠의 중심축은 스트리밍 플랫폼 디즈니플러스다. 조 얼리 디즈니엔터테인먼트 소비자판매사장은 “D23 행사장은 월트가 구상했던 플라이휠이 현실로 구현되는 공간”이라며 “이야기가 소비재와 경험으로 이어지는 연결성의 톱니바퀴 중심에 디즈니플러스가 있다”고 말했다.
때마침 디즈니는 D23 주간에 앞서 이달 7일 2분기 실적 발표를 통해 스트리밍 사업에서 첫 흑자를 냈다고 밝혔다. 당초 올 3분기를 목표로 삼았던 흑자 시점이 한 분기 당겨진 것이다. 디즈니플러스는 2019년 11월 출시된 후 5년간 110억 달러에 달하는 누적 적자를 기록해왔다. 스트리밍 시장에서 넷플릭스에 이은 ‘후발 주자’라는 입지를 극복하는 데 장기간 거액의 투자가 필요했던 셈이다.
적자의 늪에 시달리던 디즈니플러스가 흑자로 전환하며 디즈니의 플라이휠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 축은 K콘텐츠가 맡는다. D23 행사 곳곳에서 K컬처의 위용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계인 그레타 리가 ‘트론:아레스’를 소개하기 위해 무대에 올랐고 ‘엘리멘탈’의 피터 손 감독도 세션과 사인회 등에 모습을 비쳤다. 디즈니플러스에 공개되는 마블 드라마 ‘전부 애거사 짓이야’에는 알리 안이 조연으로 출연한다.
에릭 슈라이어 디즈니 TV스튜디오 및 글로벌 오리지널 전략 부문 사장은 한국 취재진과 만나 “콘텐츠 제작에 ‘공식’은 없다. 이야기의 진정성과 완성도가 흥행을 좌우하고, 세계 각지에서 K콘텐츠가 흥행하는 이유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고 본다”며 “디즈니플러스 출범 초기에는 각국에 투자를 분산했으나 이제부터는 한국·일본·호주 등 핵심 국가에 집중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 본사에서 한국에서도 스타워즈처럼 프랜차이즈화할 수 있는 지식재산권(IP)이 있는지 매우 궁금해한다”며 “적절한 IP 보유자가 있다면 인수에 나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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