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3일 단행한 광복절 특별사면·복권으로 과거 정권에서 요직을 지냈던 주요 정치인들이 사법 족쇄에서 풀려나게 됐다. 정부는 “통합의 기회를 마련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공정성을 바라는 민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과 차기 대권 구도에 일으킬 파장 등으로 정치권은 술렁였다.
14일 정부에 따르면 한덕수 국무총리는 전일 국무회의를 열어 서민생계형 형사범, 경제인, 정치인 등 1219명을 특별사면·감형·복권하는 특사안을 심의·의결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이를 재가했다. 한 총리는 “이번 사면은 어려운 대내외 여건 속에서 경제의 활력을 불어넣고 서민들의 재기를 도모하는 데 중점을 뒀다”며 “각계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사면 대상과 범위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기업인, 민생 사범 중심이었던 이전과 달리 이번에는 여야 정치인 및 전직 주요 공직자 등이 55명이나 포함됐다. 정부는 ‘국민 통합’과 ‘형평성’에 초점을 맞췄고 강조했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정치 이념을 넘어 통합과 화합의 기회를 마련하고자 했다”며 “여론 왜곡 관련자들에 대해 여야 구분 없이 사면해 정치적 갈등 상황을 일단락하고 국익을 위해 통합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다”고 취지를 밝혔다.
최대 관심사였던 친문계 핵심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명단에 최종 이름을 올렸다. 그는 드루킹 일당과 함께 문재인 전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댓글을 조작한 혐의로 2021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을 확정 받았다. 윤 대통령은 2022년 말 김 전 지사를 특별사면했으나 복권하지는 않아 2027년 말까지 선거 출마의 길이 막혀 있었다. 하지만 이번 복권을 통해 언제든 정치에 복귀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김 전 지사는 복권 결정 이후 사회에 이바지할 길을 찾겠다고 했다. 그는 “사회를 위해 보탬이 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잘 고민하겠다”면서 “복권에 반대했던 분들의 비판에 담긴 뜻도 잘 헤아리겠다”고 밝혔다. 독일에서 유학을 하고 있는 김 전 지사는 올해 말께 귀국할 예정이다.
전임 보수 정권에서 댓글 공작 사건, 국정 농단에 연루돼 사법 처리된 정치인들이 혜택을 본 것 또한 이번 특사의 특징이다. 보수층 결집을 통해 총선과 전당대회를 거치며 극심해진 분열상을 극복하고 임기 중반부 국정운영의 동력을 끌어올리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박근혜 정부의 조윤선 전 정무수석, 현기환 전 정무수석,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등이, 이명박 정부의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이 사면·복권됐다. 또 박근혜 정부 당시 총선에 개입한 혐의로 유죄를 받은 강신명·이철성 전 경찰청장, 이명박 정부 시절 댓글 여론 공작에 관여한 조현오 전 경찰청장 등도 명단에 올랐다.
윤 대통령은 특사의 키워드를 ‘통합’으로 제시했지만 정치권에는 갈피를 잡기 어려운 파장과 균열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먼저 이번 특사를 통해 당정 갈등의 불씨가 되살아났다. ‘김경수 복권’을 반대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면서도 “공감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다”고 부정적 입장을 고수했다. 추가 문제 제기로 갈등을 키우지는 않으면서도 김 전 지사의 복권에 반대하는 지지층을 등에 업고 차별화된 목소리를 견지한 것이다.
대통령실과 여당 내 친윤 인사들은 한 대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여전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대통령의 통치행위이자 고유 권한이고 그 결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전 지사의 등판은 더불어민주당 당내 역학 구도에도 상당한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의 ‘이재명 일극 체제’는 견고하지만 향후 김 전 지사가 비명계의 결집을 유도하면서 이재명 전 대표의 대항마로 부상할 수 있다고 친문계는 기대한다. 다만 당분간 전국 단위의 선거가 없는 만큼 김 전 지사가 존재감을 키우기에는 여건이 녹록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단 이 전 대표도 이날 “김 전 지사의 복권을 당원들과 함께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국민과 민주당을 위해 앞으로 더 큰 역할 해주시기를 기대한다”며 여유로운 태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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