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대구지검 김천지청 형사1부 검사실에 구미경찰서로부터 한 묶음의 사건 기록이 왔다. 대부중개업체를 차린 A씨가 7명의 고객에게 대환대출을 해주겠다고 꾀어 7억8000만원을 편취한 사건이었다. 범죄에는 그가 앞서 근무했던 대부중개업체의 고객 데이터 베이스(DB)가 근간이 됐다. 전 직장에서 확보한 기존 고객 DB를 범죄에 악용한 것이었다.
사건 기록을 보던 김동욱 검사(변호사시험 9기)는 사건이 더 커질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A씨가 대부중개업체에서 오랜 기간 일한 데다, 알던 고객들도 많았던 만큼 피해자가 7명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김 검사는 “사건 기록에 나온 피고인의 거래내역을 보니까 다른 피해자들로부터 더 많은 금액을 편취한 의심이 들었다”고 말했다.
수사팀은 즉시 전국 검찰청 사건 기록을 뒤졌다. 다른 지역 검찰청에도 A씨가 연루된 사건이 있는지 찾아봤더니 서울, 광주, 인천, 고양 등 전국 각지 검찰청에 A씨의 사건이 흩어져 있었다. 김 검사는 전국에 흩어진 A씨의 편취 사건을 이송해 달라고 요청했다. 전국에 있는 A씨의 사기 사건 6건을 이송받아 9건의 사건을 병합했다. 수사팀은 A씨의 8개 계좌에 2년치 거래내역을 전수 조사해 사건의 판을 키웠다.
수사 결과 2022년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A씨는 피해자 총 18명에게 접촉해 “기존 대출금이나 대출진행비를 입금하면 저금리 대환 대출을 해주겠다”는 방식으로 합계 12억 2000만 원을 편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고객들에게 빼돌린 돈으로 불법 도박을 한 정황도 있었다. 또 일부 금액은 다른 채무를 갚는 데 써 앞으로 이 같은 사기 사건이 더 벌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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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A씨의 신병 확보였다. 그는 기존에 알던 고객뿐아니라 처음 보는 사람들까지 접촉하며 사기 행각을 벌이기 시작했다. 당장 구속하지 않으면 피해 범위는 커질 수밖에 없었다. 구미경찰서가 앞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에서는 ‘주거가 분명하고 도주 우려가 없다’며 기각한 바 있었다. A씨가 피해자들에게 “내가 구속되면 돈을 갚을 수 없다”며 겁박한 것도 구속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가 됐다.
검찰은 후속 피해를 막기 위해 치밀하게 A씨 구속 계획을 세웠다. 검찰은 피해자들을 수소문해 A씨가 ‘구속되면 돈을 갚지 않을 거라고 겁을 준 사실이 있는지’ 물었고 몇몇 피해자들로부터 이 같은 통화 녹취를 받을 수 있었다. 김천지청은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자리에 나갔다. A씨는 구속영장 심사 자리에서 일부 피해자들과 작성한 합의서를 가져오며 불구속을 주장했다. 심문은 피의자에게 통보가 간 뒤 하루나 이틀 뒤에 열리는데 그동안 피해자들에게 겁을 주며 몇 장의 합의서를 준비해온 것이다.
수사팀은 이 자리에서 녹취를 틀었다. 녹취에서 A씨는 “검찰에서 구속영장을 청구했는데 구속이 되면 돈을 안 갚을 것”이라며 피해자를 겁박하는 음성이 나왔다. 법원도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취지를 받아들이고 결국 검찰은 A씨에 대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위반(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수사팀은 수사 과정에서 발빠른 조사뿐 아니라 피해자들과 수시로 소통해 피해자들로부터 “억울할 심정을 헤아려 줘 위로가 됐다”는 감사 편지도 수령했다. 현재 A씨는 피해자들에게 5억 원 정도 변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검사는 “대부 업체 특성상 피해자들은 대부분이 서민으로 이 중에서는 자녀 결혼자금이나 회사 퇴직금을 통째로 A씨에게 준 사람도 있었다"며 “A씨는 편취한 돈으로 도박을 하거나 빚을 돌려막기 하는 등 죄질이 나빠 구속 수사가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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