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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돌보지 않는 현실, 오지랖 부리고 폐 좀 끼치면 어떤가

국립극단 연극 '은의 혀'

홀로 남은 두 여인 통해

사회적 연대 가치 강조

국립극단 연극 '은의 혀'의 한 장면. 사진 제공=국립극단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는 인간관계의 단절이 심각해진 요즘 역설적으로 더 큰 메시지를 준다. 연대는 개인주의 혹은 자유라는 이름 아래, 더 나아가 편의주의와 경제적 논리, 효율성 추구와 경쟁이라는 미명 하에 사라져 간다.

15일 개막한 국립극단 연극 ‘은의 혀’는 아들을 잃은 여성 은수와 중년 여성 노동자 정은이 서로를 돌보는 모습을 통해 사라지고 있는 사회적 연대의 가치를 재발견한다. 두 사람의 관계는 사고로 아들을 떠나보낸 후 아들의 장례식장에 계속해 찾아오는 은수와, 그런 은수에게 말을 걸고, 밥을 권하는 상조 도우미 정은의 오지랖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야기는 타인과 얽히는 것을 계속해 거부하던 은수가 정은이 털어놓은 거짓말 같은 이야기에 점차 마음을 열고, 정은의 사연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전개된다. 정은은 자신이 반짝이는 ‘은(銀)의 혀’를 가졌다며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펼쳐 나가는데, 그 이야기가 슬픔의 심연에 빠져 있는 은수의 마음을 위로한다. 이 과정에서 ‘은(銀)’은 서로를 연결해주는 ‘은(恩)’이 된다.

국립극단 연극 '은의 혀'의 한 장면. 사진 제공=국립극단




작품은 돌봄의 가치를 개인의 문제에서부터 사회적 문제로까지 확장한다. 급식노동자 정은은 열악한 노동 현장에서 일하다 폐암에 걸리고, 혼자만의 투쟁을 시작한다. 하지만 연대 없는 투쟁은 변화로 이어지기 어렵다. 윤혜숙 연출은 “다양한 사회적 사안들에 대한 거리감은 개인마다 다르지만 돌봄은 누구나 예외 없이 주고받는 것”이라며 돌봄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을 강조했다. 극 절정부에서 “우리를 지우지 마”라고 소리치며 절규하는 은수의 모습은 관객 모두를 각성시킨다.

국립극단 연극 '은의 혀'의 한 장면. 사진 제공=국립극단


무겁고 심각할 수 있는 이야기를 가볍게 만들어 몰입도를 높여 주는 연출도 돋보인다. 라이브 세션이 참여하는 라디오 극장 느낌의 서사 진행과 유쾌한 가사의 음악 배치가 극과 잘 어울린다.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드라마 ‘경성크리처’ ‘낭만닥터 김사부’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배우 이지현이 정은 역을, 연극 ‘마른대지’ ‘우리는 이 도시에 함꼐 도착했다’의 배우 강혜련이 은수 역을 맡았다. ‘견고딕-걸’ ‘누에’ 등으로 2022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2021년 대전창작희곡상 대상, 2021년 통영연극예술축제 희곡상을 받은 박지선 작가의 신작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국내 고독사는 총 3378 건으로, 5년간 연평균 증가율이 8.8%에 달한다. 고독사 위험군은 150만 명 이상으로, 특정 연령대가 아닌 중장년과 노인, 청년 모두가 처한 문제다. 인간은 혼자일 때 취약하다. “오지랖 부리지 마라. 폐 끼치지 마라”라고 말하는 세상이지만, 아프고 외로운 옆 사람의 손을 잡아주는 것, 바라봐주는 것,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오지랖이라면 그런 오지랖은 부리면 어떻고, 또 폐를 끼치면 어떻단 말인가. 공연은 다음달 8일까지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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