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선인 이재명 국회의원이 22대 국회 과반 의석을 거머쥔 제1당 더불어민주당 대표로 18일 돌아왔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15주기인 이날 이 대표는 김 전 대통령 이후 24년 만에 민주당 대표를 연임하는 기록을 세웠다. DJ가 정권 교체를 위해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에서 대통령에 당선돼 새천년민주당 총재를 연임한 터라 이 대표의 연임과 비교하는 것이 무리일 수 있다. 당시는 대통령이 정당 대표를 겸하던 시절로 민주당 대표 연임은 사실상 이 대표가 처음인 셈이라 ‘정당 민주주의의 퇴행’이라는 비판은 불가피해 보인다.
정치권은 이 대표 스스로 “다시 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한 대표직을 또 맡은 배경에 그를 둘러싼 ‘사법 리스크’가 있다고 본다. 그는 대장동 개발 비리 및 성남FC 불법 후원금 사건, 공직선거법 위반과 위증 교사, 대북 송금 관련 제3자 뇌물 등 11개 혐의로 4개의 재판을 동시에 받고 있다. 이 대표는 또 한 번 개인적 재판에 당의 지원을 최대한 끌어내면서 사법부에도 상당한 부담을 지우며 보호막을 칠 수 있게 됐다.
누구나 짐작하듯 이 대표가 사법 리스크를 어떻게든 넘어서려는 것은 단순히 유죄판결을 받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불과 0.73%포인트의 지지율 격차로 고배를 마신 이 대표는 여야를 막론하고 2027년 3월 3일 예정된 21대 대선의 가장 유력한 대권 주자다. 이 대표는 4·10 총선 한 달 전인 3월 10일 기자들이 대표 연임 의사를 묻자 “당 대표가 정말 3D 중에서도 3D다. 누가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고 했는데 ‘호떡 뒤집듯’ 거짓말을 할 만큼 그의 권력 의지는 강력한 듯하다.
권력 앞에 도덕성의 가치와 무게를 새삼 따지지는 않더라도 이 대표가 자신의 발언을 ‘빈말’ 취급하며 연임에 나선 이유만은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는 지난달 10일 당 대표 후보로 다시 출사표를 던지면서 “단언컨대 먹고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며 ‘먹사니즘’ 한 단어로 제1당의 대표직 연임 당위성을 내세웠다. 이 대표는 유일한 이데올로기로 ‘먹사니즘’을 제시하며 “경제가 곧 민생이고, 성장의 회복과 지속 성장이 ‘먹사니즘’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가 연임에 나서며 던진 화두는 그렇게만 된다면 ‘거짓말이 대수인가’ 싶을 만큼 중요하다. 이런 과제를 대통령과 여당에 떠넘길 수만은 없다. 입법 권력을 틀어쥔 이 대표는 한국 정치와 경제의 어떤 책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는 위치에 있다.
이 대표가 재판 때문에 전력투구는 못하더라도 ‘먹사니즘’을 집중적으로 챙길 환경 또한 갖춰져 있다. 내년까지는 큰 선거가 없어 민생과 경제 발전에 담대한 발걸음을 내디디며 성과를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침 그는 국민 대다수가 먹고사는 문제로 초미의 관심을 쏟는 금융투자소득세와 종합부동산세 수술에 대해 1차 방향을 언급한 바 있다.
내년 시행 예정인 금투세 폐지를 주장하는 정부·여당에 맞서 민주당 일부에서 원론에 얽매여 금투세 강행을 고집하지만 1400만 투자자 상당수가 원하는 만큼 이 대표가 애초 밝힌 대로 최소한 ‘시행 유예’를 빠르게 결정하는 것이 맞다. 그가 “신성불가침이 아니다”라며 근본적 검토 입장을 밝힌 종부세 개편 역시 속도감 있게 여권에 제안해 연내 결과물을 도출하길 바란다.
이 대표가 입법을 주도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직면한 ‘전 국민 25만 원 지원법’은 협치를 복원하는 발판이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말처럼 서민과 영세 자영업자, 소상공인의 삶이 코로나19 시절보다 어렵고 팍팍하지만 펑크 난 국가 재정과 어렵게 잡은 물가를 도외시할 수는 없다. 정책은 타이밍인데 전 국민 지원법은 현재 상황에서는 중소기업들이 ‘오매불망’ 기대하는 금리 인하를 어렵게 할 수 있으니 이 대표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나 윤 대통령을 만나 선별 지원책으로 물러설 만하다.
DJ가 생전 정치인에게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주문하며 “정치인은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선택해야 합니다. 심지어 최악을 막기 위해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요”라고 한 말은 이 대표의 ‘먹사니즘’에도 유용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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