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은 ‘잇쇼켄메이(一生懸命)’라는 말을 자주 쓴다. ‘뼈를 묻는’이라는 어감으로 일본 드라마나 애니메이션 등에서 우직한 성격의 캐릭터를 묘사할 때도 사용된다. 식당이나 상점 앞에 이런 문구가 나붙어 있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글자 뜻 그대로 ‘일생의 목숨을 걸’ 정도로 열심히 하겠다는 의미다. ‘生’이란 글자는 원래 장원(莊園)을 의미하는 ‘莊’이었는데 봉건시대가 무너진 후 장소를 의미하는 ‘所’로 변했다가 지금처럼 바뀌었다는 말이 전해진다. 글자는 달라도 발음은 거의 같다. 사무라이들이 자신의 주군과 영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을 최고의 명예로 여긴 데서 유래한 것이다.
혼신의 힘을 쏟아 최고의 물건을 만든다는 ‘모노즈쿠리’라는 일본 장인정신의 기원도 여기에 있다. 잇쇼켄메이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후 짧은 기간에 고속 성장을 이룬 배경의 하나로 거론된다. 일본 고도 성장의 배경으로 꼽히는 종신고용제도는 영지를 지키는 무사들의 정신을 기업에 적용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근로자가 장시간의 노동을 감내하며 열심히 일하는 대신 기업이 평생직장과 복지를 챙겨준 것이다. 하지만 이 제도도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장기 저성장의 침체를 겪는 과정에서 비정규직 급증으로 무너졌다.
일본이 청년 실업, 육아 등으로 인한 경력 단절 문제를 거의 극복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20대 후반 남성의 고용률이 90%(한국 70.5%), 40대 초반 여성의 고용률이 80.5%(〃64.6%)에 달했다. 아시아 경제 위기, 글로벌 금융 위기를 거치면서 대대적인 정리해고의 아픔을 겪은 뒤 기업과 근로자들이 조금씩 욕심을 내려놓고 고용 환경을 개선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사측은 잇쇼켄메이 정신을 강요하기보다는 노동시간과 강도를 낮추고 근로자와 노동조합도 낮은 임금을 감수하되 고용 안정을 택했다는 것이다. 우리도 노사 대타협으로 노조의 투쟁 일변도 문화를 개선하고 노동시장을 혁신해야 저성장과 저고용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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