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자와 그 가족들 모두 육체적, 정신적으로 취약한 상태에 노출돼 있다는 정부의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환자 중 1번 이상 입원 경험이 있는 이가 80%를 차지했지만 자살 생각이 날 때 전문가나 가족의 도움 없이 혼자 해결책을 찾는 사람이 10명 중 7명 꼴이었다. 환자 가족들 역시 돌봄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이 응답자의 60%를 넘었고 주변으로부터 차별을 받는다고 느낀다는 이들도 60% 이상이었다.
24일 보건복지부의 ‘정신질환자 및 가족지원 서비스 확충을 위한 실태조사’ 내용을 보면 정신질환자 76.7%가 정신과 의료기관에 1번 이상 입원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자의가 아닌데 입원한 경우가 60.3%였다.
환자들은 건강상태는 물론 건강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정신질환자 중 ‘좋음 또는 매우 좋음’이라고 답한 비율은 23.9%였다. 전체 국민 중 36.2%가 같은 대답을 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조사에 응한 환자의 18.1%가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한다고 답했으며 두려움·불안감(32.8%), 병원비 없음(30.3%)을 주요 이유로 꼽았다. 만성질환을 앓은 적이 없는 환자는 44.3%로 국민 평균(58.3%)보다 훨씬 낮았다. 흡연율도 정신질환자는 26.5%로, 국민 평균인 17.0% 보다 높았다. 음주율도 정신질환자는 22.1%, 전체 국민은 13.4%로 나타났다.
정신질환자의 69.6%는 지역사회 거주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퇴원하지 못하는 이유로는 55.2%가 혼자 일상을 유지하기 곤란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들 중 60.1%가 차별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가족 또는 주변사람으로부터 괴롭힘이나 폭력을 경험한 비율은 31.9%에 달했다.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20.2%였다. 자살을 생각한 원인으로는 건강 문제(53.7%), 고독·외로움(39.4%), 빈곤(34.4%) 등이 많이 꼽혔다. 자살 생각이 들 때 대처방법은 대체로 미흡했다. 혼자 생각하는 경우가 77.1%로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었다. 전문기관 도움은 20.6%, 가족 도움은 19.3%로 나타났다. 이 같은 정신응급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대상은 가족·친척이 64.3%(복수응답)로 가장 많았다. 정신건강복지센터·정신재활시설 61.6%, 평소 알고 지낸 의사가 22.3%로 조사됐다.
가족들의 상황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가족들에게 본인의 건강 상태를 묻자 ‘좋다’는 답변은 20.9%에 불과했다. 2022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본인을 건강하다고 답한 성인의 비율(36.2%)을 크게 밑돈다. 최근 1년간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한 경우도 20.5%나 됐으며 이들 중 40%는 구체적으로 자살 계획을 세운 적이 있었고, 28.4%가 실제로 시도했다. 자살 생각의 주요 원인을 묻자, 절반이 넘는 51%가 정신질환자에 대한 양육·수발·돌봄 부담 때문이라고 답했다.
정신질환자 가족 중 “환자를 돌보는 부담이 크다”고 답한 비율은 61.7%였다. 가장 큰 어려움은 보호자 사망 후 환자 홀로 남았을 때의 막연한 불안감이 42.1%, 환자에 대한 지속적인 돌봄 스트레스가 34.1%, 환자의 취업 문제가 20.8%로 나타났다. 57.5%는 환자에게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며 환자를 돌보느라 가족 본인도 정신질환을 진단받았다는 응답도 22.8%에 이르렀다. 친인척이나 친구, 이웃 등 주변으로부터 차별을 받는다고 인식한다는 응답도 56.4%였다.
한편 복지부가 이번에 공개한 실태조사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을 통해 지난해 9월부터 올해 4월까지 정신질환자 1078명과 그 가족 995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정신질환자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의 돌봄 경험과 그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처음으로 조사했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복지부 측은 전했다. 이형훈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관은 “가족과 환자를 돕기 위한 위기개입팀 운영 등 정신응급대응체계를 강화할 것”이라며 “내년부터는 정신질환자의 지역사회 자립 지원을 위한 주거지원 서비스를 시작하는 등 정신질환자와 가족의 삶과 환경이 개선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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