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눈앞에 보이는 교육을 좇지 않습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는 마음으로 세계 대학 교육의 미래를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모델을 제시해보고자 합니다.”
다음 달 1일 개교 1주년을 앞둔 태재대는 기존 대학 교육의 패러다임을 180도 바꿨다. 100% 온라인 수업에 전공 학과도 없다. 학생 개인 역량의 ‘기초 체력’을 도모하는 교과목과 연구보다는 학생들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가르침’에 중점을 둔 교육 방식은 기존 대학들과 전혀 다른 태재대만의 특징이다.
염재호 태재대 초대 총장은 26일 서울 종로구 원서동에 자리한 태제대 대학본관 태재관에서 개교 1주년 기자 간담회를 개최했다. 염 총장은 “2002년 월드컵 당시 히딩크 감독이 선수들에게 강도 높은 체력 훈련을 시켰는데 반발이 많았지만 끝내 박지성 같은 세계적인 선수를 키울 수 있었다”면서 “이 같은 생각이 잘 전달돼서 우리 고등교육에 한 획을 긋고 다른 대학에 자극제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염 총장의 말처럼 학생들의 개인적·사회적 역량을 향상시키는 것은 태재대의 제1 목표다. 태재대는 지난해 9월 1일 개교한 이래 신입생들이 속한 혁신기초학부를 비롯해 인문사회학부, 자연과학부, 데이터과학과 인공지능학부, 비즈니스 혁신학부 등 5개 학부로 운영되고 있다. 첫해 학생 31명으로 시작한 태재대에는 다음 달 25명의 신입생이 입학한다.
이날 염 총장은 지난 1년을 돌아보며 학생 개개인의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한 ‘태재 비전 2030’을 선포했다. 비전 2030의 주요 내용은 △학술적 조직 개편 △교과과정과 비교과과정 개편 △세계 명문 대학으로의 위상 정립 △학생 중심의 교육 지원 서비스 고도화 △인적자원 관리 등 총 5개 분야다.
특히 인공지능(AI) 기반 학부 체제 개편과 AI 대학원 및 아카데미 설치 등 기존 대학 조직에 AI의 숨결을 불어넣는 작업은 태재대 학술 조직 개편의 핵심이다. 최근 국가인공지능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내정된 염 총장은 “지난해 챗GPT 4.0이 나오면서 많은 충격을 줬고 이에 우리도 AI 기반의 미래 대학으로 나아가야겠다고 생각을 했다”면서 “지금 AI가 소개되고 곳곳에서 이를 기반으로 한 기술 혁신이 시작되고 있지만 앞으로 더욱 활발히 AI가 적용되는 사회가 오면 우리 교육도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AI 시대의 교육 환경 변화를 강조하는 염 총장은 올해 신입생들을 선발하는 면접 과정에서 이미 AI 기술을 적용했다. 집단 토론 면접에서 교수들이 아닌 AI가 질문을 던지고 토론 과정을 영상으로 찍어 코딩한 후 면접관에게 전달해 평가하는 방식이다.
또 태재대는 졸업에 필요한 학점에 맞춰 학기마다 수업을 선택하는 기존의 방식과 달리 학부 전 과정에서 학생이 주도적으로 학습 계획을 설계하는 ‘자기설계융합전공’ 확대를 통한 학제의 다양화도 꾀한다.
학생·교수·교직원으로 구성된 기존의 대학 체계에도 변화를 줬다. 대학 행정과 교무 행정 등 기존의 교직원 업무에서 벗어난 태재대 직원들은 ‘솔루션 디자이너’로 불린다. 이들은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로서 학생들이 난관에 봉착하거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일이 생기면 당면한 과제를 함께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고려대 총장을 지낸 염 총장은 “대부분의 대학은 관료화·제도화돼 있다”면서 “행정 서비스는 어떻게든 문제를 풀어주는 게 중요한데 교직원들도 모두 해결책을 디자인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의미에서 솔루션 디자이너들이 모인 미래형 조직을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AI 기반의 스마트 교육 지원 체계 구축, 장학금 재원 발굴 등 학생 중심의 교육 지원에 솔루션 디자이너들이 필수적인 이유다.
새로운 조직 구성과 학생 중심의 교육 환경, 연구보다는 교육에 초점을 둔 교수 임용 등을 내세운 태재대는 미국 대학 인가를 위한 절차를 진행하는 등 글로벌 대학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학생들도 현재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온라인 강의로 학업을 이어가고 있지만 내년 봄이면 일본 도쿄에서, 그 이후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등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할 예정이다. 태재대는 원활한 국제 교류를 위해 9월 학기제로 운영되고 있다.
염 총장은 “지난 1년을 돌이켜보면 어려운 점이 있었다기보다는 그래도 보람을 느끼는 일이 많았던 한 해가 아니었나 생각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지금부터 도전해야 하는 것은 학생들을 해외로 보내야 하는데 그곳에서 얼마나 학생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자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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