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11월 미소(美蘇) 냉전의 상징인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뒤 세계경제의 연결성은 진화했다. 세계화가 추진되고 자유무역은 확대됐다. 비용 효율화와 공동 번영은 정해진 수순으로 보였다. 지구촌 곳곳에서 세계화 반대 시위도 벌어졌지만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진통으로 여겨졌다. 우리나라는 1990년 소련에 이어 1992년 중국과의 수교로 경제적 국경을 넓혔다. 미국은 신입생에게 환영연을 베풀듯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지원하며 수출입과 투자 기회를 늘려줬다.
그러나 무너진 장벽 위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법치주의가 꽃피고 자유무역이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탈냉전에도 여전히 의회 민주국가는 전 세계 4분의 1에 불과할 뿐이다. 중국·러시아가 오랫동안 이 대열에 끼지 못했다는 사실이 암운을 드리웠다. 2012년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재집권과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장기화는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구의 경계심을 점증시켰다.
과한 보조금 등 반(反)시장적 수단으로 자유무역 규범을 흔들고 비민주적 인치가 지배하는 국가에 보여줄 인내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2017년 본격화된 미중 경제 전쟁이 정권과 무관하게 확장되는 현실은 그 증거다. 당겨진 신냉전에 가세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그나마 남은 신뢰를 꽁꽁 얼어붙게 했다.
세계는 자국 보호를 넘어 ‘회랑무역’으로 좁혀져 자유무역 이상과는 더욱 멀어지고 있다. 특히 한반도는 미중 경제 전쟁에 반도체 공급망 패권 전쟁, 북중러와 한미일의 안보 경쟁, 태평양 주도권 쟁탈전까지 더해지면서 강대국 간 ‘지정경기학적(地政經技學的)’ 합종연횡과 복합적 신냉전의 표본 지역이 됐다.
높아진 무역 장벽은 어떻게 돌파할까. 유일한 길은 정치·경제 혁신과 산업·기술 혁신을 통한 우위 확보다. ‘혁신(innovation)’은 그 어원처럼 내부로부터 새로워져야 하지만 정부의 적극적 규제 혁파도 절실하다. 최근 의대 증원 논란은 혁신이 언제나 기득권과 진입자 간의 갈등 조정임을 상기시킨다. 그래서 규제는 좋을 수 없고, 신중한 규제라면 좋을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신중한 규제는 포용·개방·균형성을 갖춘다.
포용적 규제는 그 혜택이 국민에게 골고루 돌아가지만 포획적 규제는 특정 집단에 이익이 쏠리고 비용은 사회에 전가하기 때문에 위험하다. 행정은 탁상에서 출발하지만 탁상 속 숨은 내규가 갑자기 규제로 돌변해 시장이 불확실한 지뢰밭을 걷지 않도록 정보의 비대칭을 제거하면 규제의 품질은 높아진다. 규제를 만드는 정치가(statesman)는 ‘국가(state)’와 ‘통계(statistics)’를 품어야 하고 ‘정치꾼(politician)’처럼 ‘극(pole)’을 품어서는 안 된다.
국회·정부·법원 등 실행 부처와 가계·시장·기업 간 충실한 의견 교환이 이뤄질 때 규제는 균형을 찾는다. 균형 아래 형성된 규제는 국가를 세우지만 규제 당국의 기득권을 전제한 규제는 특정인을 위한 지대 추구와 참호 구축의 수단이 돼 국가 기반을 무너뜨린다.
가장 나쁜 규제는 최소한의 준수 의지나 행동 방향도 설정할 수 없게 만드는 규제다. 인센티브를 통한 민간의 자율 준수 유도나 의견 수렴이 아니라 규제 권한을 악용해 뺑뺑이 돌리고 국민은 비용을 지불하고 나서야 행동 기준을 정할 수 있다면 그런 규제는 언제나 경계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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